지옥이 있다면 어디와 비슷할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 치과일 것이다. 신경치료를 한 번이라도 받아 본 사람이라면 그 고통에 치를 떨 것. 지옥 스토리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치과를 나올 때 치르는 돈의 액수를 보고 더 치를 떤다. 늘 천문학적인 숫자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치아 보철물이 빠졌다. 이와 이 사이 좁은 틈을 메운 것이다. 처음엔 가볍게 때울 줄 알았다. 그런데 치과에서 200만 원을 넘게 부르는 것이 아닌가. 완전 사기라 생각해서 다른 곳도 알아보았다. 그러자 다른 곳에선 300만 원을 부른다. 소개받아 간 다른 곳은 그나마 할인기간이라고 저렴하게 180만 원.
작은 틈새 하나를 메우는 데 웬 금액이 그리 비쌀까. 작은 틈이라고는 하지만 양쪽 이빨에 같이 씌워줘야 하기 때문이라나.
도저히 그 금액을 낼 수 없어서 미루었다. 그때 마침 아는 교사로부터 치과를 소개받게 되었다. 그 선생님도 아들이 이빨이 깨져서 병원을 갔더니 100만 원이 넘는 금액이 나왔단다. 그래서 알아보다가 찾아간 병원에서는 만원 조금 넘는 금액으로 치료받았다고. 어차피 빠질 치아라 가볍게 처치한 것이다.
치과에서 하는 과잉치료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이 때문에 고생을 한 나는 치과에다 천문학적인 돈을 갖다 주었다. 공포스러운 통증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이번에 소개받은 치과에서는 이 두 가지가 말끔히 해소되었다. 신기하게도 '친절한' 의사를 보았다. 설명을 자세히 해 줄 뿐만 아니라 권위의식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숙련도 내지는 기술이 출중했다. 꼭 필요한 치료만 콕 집어서 하는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마 치아를 불필요하게 깎아내지 않고 단번에 해내는 비법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이도 젊은데 신기했다.
그 비밀은 대기자 수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곳 진료 예약은 한 달 전이나 가능했고 대기시간이 두 시간은 기본이기 때문이다. 근처 병원에는 손님이 가물에 콩 나듯 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그 손님이 바가지를 왕창 쓸 수밖에) 많은 수의 환자를 매일 치료하다 보니 기술이 늘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감동인 것은 치료비다. 200만 원을 부르던 내 치아치료는 단돈 12,000원에 말끔히 끝냈다.
무엇이 다를까. 물론 치료를 정석대로 한 건 아니다. 의사 말이 '어차피 씌우더라도 영구적인 건 아니다. 때워서 쓸 수 있는데 까지 쓰다가 한 참 뒤에 씌우는 게 경제적'이라고. 그 뒤로 4년 동안 세 번 정도 때웠다. 귀찮기는 하지만 목돈이 나가지 않아서 좋다. 게다가 내 경험상 금으로 씌워도 10년 넘으면 떨어지기도 한다. 이 의사는 환자에게 치료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알려주되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치료방법을 권한다. 처음으로 치과치료에도 '경우의 수'가 있는 줄을 알게 되었다.(대부분의 치과는 환자의 선택권 없이 가장 비싼 '경우의 수'로 치료한다.)
그의 고집은 대단하다. 그 병원은 교정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딸이 다른 병원에 가서 교정을 하고 충치치료를 여기서 한다. 그런데 교정 치과에서 충치라며 치료를 권하는데도 굳이 아직 충치가 아니라고 우긴다. 색깔로는 그렇게 보이지만 잘 닦으면 없어질 수도 있다고. 그러면서 교정치과의사에게 주라고 확인서까지 써 주었다. 아직 충치가 아니라는.
같은 업종에서 특히 의사라는 소수 엘리트 집단에서 이런 행동은 위험하고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자칫 업계에서 왕따 당할 수도 있다. 누가 봐도 정당해 보이는 치료까지 스스로 과잉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 고집스러움 말이다. 그 확인서를 받아 든 교정치과 의사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런 고집을 의사들에게서 처음 본 나도 신기했다.
그 치과는 블로그에도 과잉진료 없는 치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아프지 않게 치료하는 것으로도.
한 가지 단점은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이가 아파도 돈이 없어서 치과에 갈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 그들에게 이 병원은 구세주 같다.
지난주에 그 치과에 갔다. 열정적으로 호박엿을 먹다가, 전에 때운 치아 보철물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 한 번 감탄하게 된 그 의사의 친절함, 통증 없는 깔끔한 치료, 만원 안팎의 부담 없는 치료비. 새삼 그 의사에게 존경심이 들었다.
꼭 이태석 신부나 슈바이처 박사처럼 아프리카로 떠나야만 존경스러운 의사인가. 이렇게 서민들이 치과를 제집 드나들듯 해주는데.
또 하나. 의사라고 해서 반드시 희생정신이 있어야 할까? 아니다. 이는 마치 내가 교사라고 해서 무조건 사명감을 가져라 하는 말처럼 부당해 보인다. 둘 다 그저 '일'일뿐이다. 개인이 매일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
'어떤' 일을 우리는 '하면서' 산다. 그런데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말 그대로 '의사'이면 무조건 좋은 건 아니지 않을까?
직업으로서의 의사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 스타일이라서. 하지만 이 청년 의사를 보면서 상상해 보았다. 내가 의사가 된다면 어떨까 하고. 내가 아이들을 대하듯 열정적으로 환자를 치료한다면 말이다. 만약 수술이나 치료를 뛰어나게 잘하고, 게다가 항상 친절하다면 환자들로부터 '감사+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다른 일 같으면 기껏해야 '감사'로 끝날 일도 말이다. '+존경'에는 다 이유가 있다. 바로 그들이 우리의 귀중한 몸, 생명을 다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