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은 말투에서 시작된다.

말투에 끌려 결혼까지 한 여자가 있다.

by 허윤숙

분위기가 지적인 배우가 있었다. 종종 광고 모델로 나와서 눈에 익었는데 나중에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웬걸, 완전히 다른 사람이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입을 다물고 있을 땐 지적이고 담백해 보였는데. 인터뷰 내용도 그렇고 말투가 영 아니었다. 자신 없어서 입을 가리고 호호호 웃음으로 대충 때우는 태도 등 매력적인 곳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더 실망스러운 부분은 문장 구성이 안 되는 '유체이탈 화법'을 쓰는 것이었다.


더한 것이 있다. 불리한 내용엔 길게 토를 달아서 무마시키려는 의도가 보인 것이다. 그 인터뷰는 편집의 힘을 빌리지 못 했나 보다. 아니 그 보다 더했는데 편집으로 그나마 나아진 건지도. 다 자르면 남는 게 없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중 기억에 남는 몇 사람이 있다. 나랑 동갑내기 동료가 떠 오른다. 그녀는 외모가 평범했는데 뭔지 모를 매력이 감싸고 있었다. 말수가 별로 없는데도 대화를 하고 싶어 지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 비결이 뭔지 혼자 끙끙거리며 연구하기도.


나는 반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보다 내 외모가 더 나은 것 같았고,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업무능력도 내가 더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녀에게 콤플렉스를 느꼈다. 늘 차분하고 조곤조곤 말을 하는 그녀에 비해 늘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방방 뜨는 나는 매력이 없는 여자 같았다.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났다. 그녀에게는 모두들 진중하고 예의 바르게 대했다. 나에겐 편하다 못해 대충 대하고. 그녀에게는 진실함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비밀은 그녀의 말투에서 찾게 되었다. 그녀는 절대 가볍게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루한 스타일도 아니었다. 몇 마디 안 하는데도 결정적인 순간에 툭하고 고급진 유머가 튀어나왔다.


하루는 내가 흥분해서는 당시 인기 있던 모 가수 이야기를 했다. 그 가수는 내가 아는 누구의 누구가 친구라고. 그래서 그 가수의 사생활부터 연애 이야기까지 주르륵 아는 척을 했다. 좋아하는 가수니 정보도 풍부했다. 그런데 그 이야길 듣고 있던 그녀가 한 부분을 딱 지적하더니, "그 여자 연예인은 사귄 게 아니라던데요?" 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아냐고 하니 그냥 안다고 했다. 나는 목소리 톤을 높여서는 지인이 말해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가 맞았다. 그리고 그녀가 그 가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대학 같은 과 친구였던 것. 같이 동아리 활동도 해서 친했다고.

그 이야길 왜 나중에 했을까? 내가 흥분해서 말할 때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자리에서 내가 무안당할 수도 있었고 자기가 그 가수와의 친분을 함부로 말하면 그 가수에 대해 루머가 생길 수도 있으니 조심했던 것이다.


나라면 논쟁의 끝을 그 자리에서 냈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나처럼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사람은 매력이 없다. 하고 싶은 말도 꾹 참을 줄 알아야 한다. 아니 그 사람들은 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무례한 말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거나 별로 의미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화법을 연구하고 연구한 끝에 그나마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남을 배려해서 말하려고 노력 중이다.


케네디 부인이었다가 석유왕 오나시스와 재혼했던 재클린 오나시스는 이런 매력에 대해 말했다. '뭐든 반만 보여주라'라고. 자신의 모든 것을 주저리주저리 보여주고 말하면 호기심이 없어지고 다음에 만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자신의 매력이 100이면 딱 잘라서 50만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사람을 만나면 신기하게도 100이 200이 되는 마법이 일어난다.

나는 100에다 없는 매력까지 끌어다가 보여주려고 안간힘을 쓰곤 했다. 그러면 100이 금세 마이너스가 되고 만다.


대화에선 더욱 적나라하다. 남에게 나를 어필하고 싶을 때 차라리 대놓고 자랑질하는 건 괜찮다. 돌려서 자랑질하는 건 보기 싫다. 예를 들어 이효리처럼 나 돈 많아요. 이러면 되는데 자기 집이 너무 넓어서 청소가 힘들다는 둥. 작은 집으로 가고 싶다고 투정 부리는 식.


남이 나를 오해했을 때도 그렇다. 그때 자길 오해한 부분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으면 더 의심을 사고 매력이 반감된다. 대부분의 오해는 시간이 흐르면 해결된다. 그땐 상대방이 미안해하면서 변명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매력을 느낀다.


왜 반만 보여주는 게 더 매력적일까?

우리는 모든 걸 다 설명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별다른 사고를 하지 않는다. 대신 정보를 띄엄띄엄 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상상력이 보태지고 정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논리를 세운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 상대방이 가진 장점에 상상력이 가해진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사고의 흐름상 사람은 이가 빠진 정보를 빈틈없이 메우는 데, 그 중간중간 자신의 사고가 상대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연예인에 대한 환상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보는 모습은 그 연예인의 일상 중 극히 일부분을 포장한 것이다. 사진 한 장이나 노래 한곡, 잠깐의 영상물로. 그 위에 우리의 상상력과 경험으로 고운 색깔을 입힌다.


매력적인 사람의 말투. 이건 억지로 되지는 않는다. 그 말투를 만들어낸다라기 보다 남을 배려하는 인성과 자신을 절제하는 능력, 또 한 번에 다 끝장내려는 조급함이 아니라 여유 있는 태도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

그런 매력을 지닌 사람을 만나면 연인으로 삼고 싶지 않을까? 실제로 나는 결혼까지 해버렸다. 남편의 매력적인 말투에 끌려 어쩌다 보니.


좀 헷갈리긴 한다. 말투 하나가 이렇게 중요한가 싶기도 하고, 그 말투에 너무 현혹되면 안 되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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