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 홀릭
내가 거울까지 보며 말투를 연습하는 이유
미스터리가 있다. 내가 왜 남편에게 빠졌을까? 지금은 희미해져 버린 추억을 더듬다 딱 만나는 지점이 있다. 그래 맞아 말투.
20대 시절 교사를 그만두고 건축 설계 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다. 그 회사에선 남자 친구였던 남편의 말투가 유행이었다. 당시엔 핸드폰이 없다 보니 사무실로 전화 오는 걸 서로서로 바꿔주었다. 남편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마다, "안녕하십니까-아? 허윤숙 씨 계십니까-아?"하고 앵무새처럼 흉내 내곤 했다.
말 끝에 '아'자가 들어간 이유가 있다. 남편 말투가 워낙 느리다 보니, 말끝을 끌면서 말하는 습성이 있어서다. 게다가 은혜로운 동굴 보이스. 중저음으로 낮게 깔린 묵직한 음성이 매력적이었다. 매력적인 울림이 있는 음성으로 느릿느릿 말하면 여유와 기품이 있었다. 결혼하고 살아보니 상상한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최종적으로 입문하기까지는 이미지가 중요하니까.
느릿느릿 말투는 평소 여유로운 남편의 성품을 반영하고도 남는다. 오죽하면 내가 우리 남편은 쓰나미가 몰려와도 뛰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까?(가끔 내 속이 터져 죽는 경우가 있는 걸 제외하면 아직은 참을 만하다.) 저음의 품격 있는 말투도 남편의 성품을 대변한다. 남편이 촐싹대는 걸 본 적이 없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젓가락질은 남들의 0.75 배속을 넘지 않는다. 만약 남편이 유튜버가 된다면 자기 유튜브 속도 설정이 잘 못 된 줄 알듯.
신은 부부를 한 세트로 묶는 게 분명하다. 남편이 느린 만큼 내가 빠르니까. 세상은 이처럼 + -가 각각 제로로 환원되는 지점을 향하는 경향이 있다. 남편이 느림의 미학으로 떨어뜨린 능률을 내가 빠름 빠름으로 주워 담으니.
명절 때마다 나의 설거지 속도는 집안에서 혀를 내두른다. 산처럼 쌓여있던 그릇이 눈 깜짝할 새에 설거지되어 엎어져 있는 걸 보고는. 다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릇 위생을 의심하면서.
내 빠름은 말투에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 내가 아무리 차분하게 말하려 해도. 듣는 사람 입장에선 남들의 1.5배속이다. 성격이 급하고 말이 많은 나로선 최대한 짧은 시간에 많은 말을 한다.
그 조급함은 무매력으로 비취기 십상이다.(적어도 내가 남들을 볼 때) 말을 많이 하고 빨리 하면 의사 전달이 안 된다. 천천히 핵심만 말하면 임팩트가 있어 거역하지 못할 매력을 풍긴다.(속으로 억울함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가성비가 이렇게나 떨어지는데도, 왜 나는 많은 말들을 빠르게 쏘아대 왔는지.) 특히나 가만히 있으면 멋있을 일도 말을 앞세우는 바람에 감점이 된 적이 많다.
나에겐 말이 많고 빠른 것 외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사회생활에서 해맑음은 득이 될까, 독이 될까? 적어도 득은 되지 않는다. 나의 '해맑음'이 빠른 말투와 결합되면 소위 '밥'이 되기 십상이었다. 한 마디로 늘 '들떠 있는 말투'. 나는 아주 작은 걸로도 행복해하는, '행복 관문'이 저렴한 사람이다. 그러니 어린아이처럼 작은 일 가지고도 들뜨고 행복해한다.
내가 쓸데없이 행복한 건 남들도 환영할 일이다. 우거지상을 하고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하지만 인간 사회라는 게 세렝게티 초원과 다를 게 없다. 즉 '약육강식'. 사자는 먹잇감을 노릴 때 무리가 도망가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다. 그때 가장 늦게 뛰는 놈 한 마리만 보고 달려든다. 힘이 없어서 늦게 달릴 거라고 보는 것.
사람도 마찬가지다. 조직에서 가장 만만해 보이는 상대가 모함하기도 좋고, 궂은일 떠맡기기도 좋다. 그럼 누가 만만한지 어떻게 아는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속속들이 모를 땐 툭 건드려보면 된다. 평소 말투가 단호한지 물렁물렁한지. 속내를 감추는지 아니면 홀랑홀랑 내 보이는지.
나는 속을 홀랑 벗어 보이고 늘 방방 떠 있었고 순진했고 무엇보다 일 중독자였다. 그 결과 궂은일은 항상 내 차지였다. 사회 초년생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달라지려고 갖은 애를 쓸 뿐.
너무 해맑게 태어난 게 죄라면 죄일까? 나의 '해맑음' 때문에 부부 사이에도 늘 불공정 조약이 맺어진다. 발끈하는 건 난데 승리자는 남편이다. 말 몇 마디로 기선을 제압하는 능력이 압권이다. 연애시절 하루는 내가 '우리 그만 헤어지자'라고 했다. 그러자 남편이 아무 말 없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 참 흐른 후 한숨을 푹 내 쉬더니 딱 한마디 했다.
"이제 와서 그건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지 않아?"
그러자 곧바로 내가 '맞아. 너무 늦었지. 아-암 그렇고 말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마 여유 있는 말투의 권위에 눌린 듯하다. 그렇다. 말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 그건 여자의 마음도 되돌리는 힘이 있다. 내가 남편과 결혼까지 한건 말투에 홀렸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패배감으로 분함, 당혹스러움, 치사함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올 때마다 거울을 보고 연습하곤 한다. 낮고 침착한 어조로 천천히. 턱을 약간 쳐들고는,
"당신 요즘 너무 심하지 않아? 오늘 저녁밥은 당신이 해."
아무래도 우리 부부는 실버타운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그러려면 얼마나 벌어놔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