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쭉한 욕

나는 따뜻함이 몹시도 그립다

by 허윤숙

"나 있잖아. 나이 들면 욕쟁이 할머니 유튜버 할까?"

남편은,

"왜. 또?"

하는 표정을 짓는다.





지역화폐 신청한 돈이 나온 기념으로 집 앞에서 남편이랑 술을 마셨다. 순전히 지역 경제를 살리는 취지(?)에서.

술이 한잔 들어가자 내 안에 감춰져 있던 찌질함이 스멀스멀 똬리를 풀어낸다.


"우리, 빨리 시골 가자. 난 도시랑 안 맞아."

그동안 세련된 화법(언제 내 화법이 한 번이라도 세련된 적이 있긴 했는지)을 써야 하는 생활에 지쳤다.


K가 그립다.


K는 내가 11년 전 상해에서 들어오자마자 다닌 시골 초등학교에서 만났다.

18년 만에 학교에 돌아와서 낯선 데다. 아이들을 데리고 있을 형편이 안 되었다. 결국 시댁에 맡기고 남편과 함께 고군분투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교사들은 뻔한 내 사정을 짐작하고는,

"안 됐다."라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술을 한 잔 사주면서,

"마. 인생 별거 있소? 술이나 한잔 하소."

였다.

나보다 훨씬 어리고 남자지만, 그는 나랑 잘 통했다.

그는 한마디로 부산 사나이였다.

의리와 정이 '쏴라~'있었다.


그는 날이면 날마다 술에 취해 있었다. 나는 술을 못 하지만 그랑 있으면 마음이 편해서 곧잘 술잔을 기울였다.

둘 다 힘든 일이 있으면 전화 한 통에 밤이라도 달려왔다.

서로 기대기 위해.


만나서 특별히 조언해주는 건 없었다. 그렇게 말 많은 내가 그와 대화할 때는 주로 들어주었고, 그는 주로 욕을 했다.

그러다 그가 노총각으로 늙어 죽는 게 안타까워서 여교사를 소개해주기도 하고, 그가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가 보이면 앞장서서 다리를 놓아주기도 했건만. 남의 문제는 잘도 해결해주는 그가 자신의 장가드는 문제만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다.


매번 안타까운 마음에,

"근데... 장가 좀 가지." 하면 곧바로,

"!@%?♡#~%"육두문자가 날아온다.



결국 사람과 술을 너무 좋아하는 우리 남편에게도 그를 소개해주게 되었고, 셋이서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는 술을 좋아하는 남편과 죽이 잘 맞았다. 남편은 말했다. 세상에서 그렇게 인간성 좋은 사람은 처음 보았대나?


그의 의리와 인간미에 매료된 남편은 그에게 거듭 감사했다. 자기 부인이 직장에서 힘들 때마다 곁에서 힘이 되어 주었으니.


그러던 남편이 어제 술을 먹다가 갑자기 그 선생에게 전화를 해 보란다. 요즘 남편도 도시생활에 지쳤는지 나에게 힘듦을 토로하면 서다. 그도 정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래서 K에게 곧바로 전활 하니... 역시 그답다. 또 혀가 꼬여 있다.

"또 술 먹어?"

"에이씨... 와, 또?"


"이 저녁에 술을 먹는 거 보니, 아직도 장가 안 갔나 보네?"

"뭐요? ~#@$@!# 그딴 얘기하려면 마, 끊으소!!!"

"아냐, 아냐."


그는 늘 이런 식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하루 종일 받았던 상처가 그 욕 한마디에 싹 치유되는 느낌.

이게 대체 뭘까?

왜 나는 세련된 화법에는 상처를 받고, 이 따위 욕 한마디에 힐링이 되는 걸까?


그 비밀은 바로 '마음'에 있었다.

매끈하게 다듬은 말로는 속에 있는 차가움을 감추지 못한다.


반면 아무리 신문지로 대충 구겨서 싸도 좋은 향은 드러날 수밖에.

K의 욕 퍼레이는 그 향을 위장하기 위함이다.

너무 따뜻함이 넘쳐나서 자기도 주체하지 못하니, 신경질이 나는 거다. 그 신경질을 또 만만한 욕으로 해소하고.


내가 나 안 보고 싶었냐고, 왜 전화도 안 하냐고 하니, 또 욕이다.

"에이씨!@#!@#$!$

아줌마... 쪼 옴... 내가 뭐하려고 아줌마가 보고 싶소?"


하지만 나는 안다. 보고 싶다고 말하기엔 너무 보고 싶었다는 걸. 또 전화를 하기엔, 너무 보고 싶어서 또 못 하고.

내가 그랬으니까...


나는 그의 따뜻함과 주파수가 맞았다. 하지만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주책맞게 보는 경우가 생긴다.

나는 그때마다 반발심이 생긴다. 따뜻함이 뭐 어때서?

따뜻함은 뜨거운 피를 가진 사람의 본능 아닌가?


그는 내가 차가움에 베일 때마다 기댈 따뜻함이다.


그를 '따뜻함 교주'로 평생 모시기로 한 장면이 있다.

9년 전 내가 갑상선 암에 걸려 학교를 쉬게 되었을 때다.

그때 그가 나를 위해 송별회를 열어주었다.

그런데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엎드려서 펑펑 우는 것이다.

다들 깜짝 놀라서 왜 그러냐니까,

" *_%~^^##@ 에이씨, 누님이 왜 하필 그딴 게 걸리냐고요?"


그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의 표정은 이랬다.

'이게 뭐지?'

'지가 뭐라도 되나?' 하는...


사실 그는 나에게만 잘해 준 게 아니다.

어느 정도 기준을 정해 놓고는, 인간성 함량 미달만 아니면 아낌없이 퍼주는 나무였다. 그 나무에 기대어 쉴 수 있게 언제나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벌리고 서 있던 그.


하지만 그를 보는 시각은 제 각각이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정이 많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특히 여자인 경우) 자길 좋아해서 그러는 줄 알고 선을 분명히 그었다.

적어도 그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무성 인간'으로 존재했건만.


그도 단점이 있었지만 그 모든 걸 덮는 건 그의 따뜻함이었다.

피가 돌고 살이 오른 사람만이 가지는, 인형이나 로봇과는 다른 그 무엇.

바로 그... 인간의 특권이자 의무인 '따뜻함'이다.


그 따뜻함을 표현하는 건 평소 그의 언어 습관이었다.

그는 자기가 싫어하는 인간에게는 아주 깍듯이 대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인간미가 보인다 싶으면 육두문자로 대화했다.

묵은지 같고 홍탁 같은, 깊이 있는 걸쭉함이 배어 나오도록.


그의 언어 습관이라고 해봐야 대체로 욕 비슷한 게 전부다.

그런데 그 욕이 너무너무 그립다.

매끈하게 말하고 돌아서선 욕을 하는 듯한 그 눈빛들에 지쳐서다.

도시 생활은 대체로 그렇다. 겉으론 예의 바르고 친절하다. 하지만 그뿐이다.

시골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이유다.




욕 라테 할머니나 30년 전 역삼동에 있던 욕쟁이 할머니 술집 등은 모두 욕을 그리워하는 현대인의 갈증을 해소시켜준다.


박막례 할머니라는 걸출한 유튜브 스타가 나오게 된 데는 손녀의 기획력이나 편집기술, 할머니의 재치도 한몫했지만 뭐니 뭐니 해도 할머니의 구수한 욕이 주인공이다. 한동안 그 할머니에 매료된 나는 하루라도 그 욕을 듣지 않으면 귀에 가시가 돋칠 지경이었다.

그, 뇌리에 냉수를 한 바가지 끼얹고, 심장과 간에 찜질팩을 해주는 그 발효식품 같은 욕.




물론 악의에 찬 욕은 제외다.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난 욕은 보약과도 같다.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유익한.

반면 매끈한 도시 화법은 귀에는 달지만 몸에는 별로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반대로 내뱉는 것들이니.

영적인 동물인 사람이 그 걸 모를까?






난 어제도 눈으로는 욕을, 말로는 칭찬을 들었다.

그 찜찜함을 어쩌지 못해서 또 K에게 전활 걸었다.

"나 아무래도 도시생활이 안 맞나 봐."

그러자 0.1초도 안 되어 욕이 튀어나왔다.

"에이씨. #@!$$ 누님. 그러니까 내가 도시로 가지 말랬잖아. 이리로 다시 오소."


고민에 빠진다.

'진짜로 그럴까?

내가 시골로 다시 가려면 애들이 둘 다 대학에 가고 독립을 해야 하는데...

또 남편 직장은 어떻게 하지? 그리고 왜 다시 시골로 왔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해야 하나?'



"저 이해하실지는 모르겠는데요. 욕을 들으려고요."




면접 중 교감선생님이 다시 물어보실 것이다.

"뭐라고요?"



"욕이요. 욕을 듣고 싶단 말이에요.

전 욕이 듣고 싶다고요. 찰지고 저급 지고 걸쭉하고요...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뿌리 깊은 그 무엇, 그게 아니면 저 죽을 거 같다고요. 너무 매끈하고 차갑고 야들야들하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들에 죽을 거 같다고요. 엉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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