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고통은 작아 보인다

공감능력이 없으면 저지르는 실수

by 허윤숙

몇 년 전 놀랐다. 갑자기 숨을 쉬기 힘든 게 아닌가. 특히 누우면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병원에서 식도염이라고 했다. 처방해준 약을 먹었지만 낫지 않았다. 큰 병원에 가서야 '갑상선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난생처음 전신 마취하고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 전엔 갑상선 암이 착한 암이라고 생각해서 무시했다. 하지만 수술에는 위험이 따른다. 사람마다 간혹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내가 그랬다. 4시간 걸릴 거라고 말했던 수술이 7시간이나 걸렸다.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아서다. 수술 대기실에 있던 남편은 별 생각이 다 들더란다. 예정된 시간이 서너 시간이나 지나면서 수술이 이어지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니.


수술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했다.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수술 부위가 보기 싫기도 했다. 전신 마취의 후유증으로 기억이 깜빡깜빡하기도. 그러자 그 수술에 대해 가졌던 생각이 떠올랐다. 주변에서 갑상선 수술을 한다고 하면, '죽는 것도 아닌데 뭘?'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많이들 하는 수술이고 사망률은 낮으니. 역시나 수술을 하고 나자 반응이 둘로 나뉘었다. 별거 아니라는 사람과 크게 안쓰러워하는 사람으로.


첫 번째 사람들은 갑상선 암에 대해 너무 쉽게 말했다. 한 사람은 주위에서 갑상선 암 수술한 사람을 보았다며 일반화하고 있었다. 수술하고 나서도 펄펄 날던데, 내가 엄살을 떤다고도 했다. 듣고 보니 그 환자는 한창 젊은 나이에다 부분 절제였다. 나는 임파선 절제에다 나이도 많은데 말이다. 수술범위나 나이에 따라, 기본 체력에 따라 달라지는 게 수술 후유증이다. 알아주지 않으니 서운하고 외로웠다.


쉽게 내뱉는 '입찬소리'는 부끄러움을 부르기 십상이다. 얼마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갑상선 암'에 걸렸다고. 대형병원은 수술 날자 잡기가 어려운데, 나에게 아는 의사 없냐고 물어보았다. 자신이 전에 말한 것을 잊어버렸나 보다. 갑상선암에 걸리니 전신에 힘이 하나도 없고 우울하다고 하소연한다. 1시간 동안이나. 다른 이가 아닌 나에게.


반면 안쓰러워하던 사람들에겐 특징이 있었다. 그들도 전에 아파본 것이다. 수술이 얼마나 힘든지 그들은 안다. 그저 뭉뚱그려 '수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게 아니라, 수술 전의 불안감, 아이들 돌볼 사람, 수술비용, 회복기간 동안의 살림살이, 수술 흉터, 수술 후유증 문제 등등 말이다. 구체적인 '힘듦'을 떠올리니 눈물이 나는 것이다. 본인의 고통과 오버랩되어.


겪어보지 못한 일은 낯설다.
이 '낯섦'이 무심함이 되고,
'무심함'은 다른 이의 가슴을 벤다.


공감능력이 없는 사이코 패스는 심각하다. 연쇄살인범의 경우 정작 자기 손가락 상처에 엄살을 떤다. 남의 고통을 자신의 손가락 고통만큼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오래전 동생이 죽고 나자 1년간 힘들었다. 그때 어떤 이들은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동생 장례를 치르고 얼마 후였다. 전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던 모임이 있었다. 그 모임에서 내가 맡은 일이 있었는데 당분간 못하겠다고 했다.(당시엔 밥도 제대로 해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한 여자가 싸늘하게 대했다. 뜬금없이 자신은 책임감이 강하고 대범하단다. 자기라면 이런 일이 생겨도 일상에 지장이 없게 할 거라고.


그 말을 반증하려던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자의 친정엄마가 돌아가셨다. 그러자 곧 넋이 나간 사람이 되었다. 모임에는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자신이 겪지 않은 일에 대해선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알 수 없는' 영역이니까. 그래야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꼴이 우습게 되지 않는다.


경험하지 못한 일도 얼핏 이 나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남의 가슴에 대못을 박지 않고, 나아가 공감해 줄 수 있게.


독서가 아닐까 한다. 책에서는 간접적으로나마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볼 수 있다. 남의 사고를 빌려 '신선한 사고'를 할 수도 있다. 이 모두 '공감'이다. 남의 고통을 쉽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고통을 제대로 겪어보지 못했거나, 짐작컨대 독서를 게을리 한 사람이다.


평소 꾸준한 독서를 통해 공감능력을 미리 길러놓으면 어떨까? 일부러 '고통을 맛보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나을 듯하다.


당장 적용할 수도 있다. 다가오는 추석을 맞이해서. 며느리에게 명절이 어떤 것인지, 가장에게 삶이 얼마나 무거운지, 청년에게 취업이나 결혼이 얼마나 힘든지, 요즘 아이들에게 학업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등등. 이 모든 것은 책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알아낼 수 있다.


가을이 오긴 오나보다. '말'에서 출발한 글이 '독서'로 결론 나는 거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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