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혈액형이세요?

이 말에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있었다

by 허윤숙

유난히 점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손금, 관상에 관심이 많다. 실제로 공부를 열심히 한 결과 손금에는 일가견이 있다. 이는 점이라기보다 확률에 더 가깝다. 이런 손금을 가진 사람은 이렇고 저런 손금을 가진 사람은 어떻고 등등.


사람들이 점 보는 것과 비슷하게 쓰는 간단 버전 통계가 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혈액형이다.

혈액형이라고 해 봐야 딱 4개 갖고 하는 말이다. A형, B형, AB형, O형

조금 더 세분시켜서 말하기도 한다. AA형, BB형

그 혈액형의 특징이 진하게 드러나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재미 삼아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서,

혈액형 알아맞히기 게임을 한다.


나도 많이 해 봤다. 그러다가 곤란해진 적이 있다.






하루는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혈액형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내 안의 퀴즈 본능이 발동했다.(참고로 나는 시댁에 처음 인사 갔을 때도 퀴즈 본능을 주체하지 못했다. 어른들하고 식사 도중 텔레비전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상식 퀴즈대회가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정답을 외친 것이다. 글쎄... 시어른들은 새로 들어올 며느리가 상식이 풍부하다고 하셨을까? 아니면 엉뚱하다고 하셨을까?)


어쨌든 퀴즈 본능이 발동한 나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혈액형을 하나하나 알아맞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그리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 게다가 나는 몇 명은 일부러라도 틀렸어야 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쓸 데 없이 정확했다.






한 남자는 내가 혈액형을 짐작해서 말하자, 입을 꾹 다물고는 대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얼굴까지 붉혀가면서.

이 뜬금없는 상황에 나는 나대로 무안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내가 말한 혈액형이 맞았던 것이다. 그 남자는 자기 혈액형이 싫었던 것. 그 혈액형이 대표하는 성격이 속이 좁아 보여서다.

혈액형 분석을 너무 맹신하는 거 아닌가? 그냥 재미로 보는 걸 가지고. 하지만 재미로 봤다고 하기엔 내가 너무 승률이 높았다. 그러니 자기 혈액형의 특징이 더욱 명료해진 느낌이 들었을 듯.


그 뒤로 나는 혈액형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꾹 다물게 되었다. 사실은 다른 사람들도 내 혈액형을 거의 100% 맞춘다. 내가 어떻게 맞추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웃으며,

"그냥. 딱 보면 그래 보여요."

라고 말한다.

속으로만 짐작할 뿐이다. 그 웃음의 의미가 뭘까? 하고.

초긍정주의자인 나는 생각한다.

'내가 성격이 너무 좋아 보여서 그런가 보다.'

만약 내 성격을 부정적으로 보고 말한 거라면, 가볍고 변덕스럽고 이기적이라고 말 한 걸 수도.






"너의 혈액형을 알 것 같다."라는 말에는 선입견이 깔려 있다.

말한 사람이 각각의 혈액형에 대해 갖고 있는.

게다가 그 사람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알아맞힌다는 말인가?

겉에서 슬쩍 본 이미지만 가지고.


친한 사이에 하는 농담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혈액형을 알아맞히는 일이 사람에 따라서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나도 이 망할 놈의 퀴즈 본능을 조금은 절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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