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잘하면 실수가 많다
말을 좀 못 해도 남에게 상처 주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전에 유명한 강사분과 이야길 나누게 되었다. 여자분이었는데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강연을 잘하기로 유명했다. 그분의 강연을 들으면 심각한 고민거리들이 명쾌하게 해결이 되었다. 드는 비유도 적절하고 서민적이면서도 유머가 가득한 말투, 따뜻한 위로의 말, 모든 게 가능했다. 그 분과 사석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 내심 화려한 입담을 기대했는데, 웬걸 거의 침묵 수준이었다. 물어보는 말에만 대답하거나 주로 남들이 하는 말을 끄덕끄덕 들어주기만 했다.
사람들이 의외로 말수가 적다고 하자, "나는 원래 돈 안 되는 말은 안 해요." 하며 소리 나게 웃으셨다. 그리고 중요한 말을 했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남들의 실수에 대해서도 너무 정확하게 콕 찔러서 말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러니 상처를 더 크게 받아요. 임팩트가 강하니. 그래서 강연이 아니면 되도록 말을 안 하려고 노력해요. 회사 직원들과 회의를 하면 다들 얼어붙더라고요. 자기들이 잘 못한 걸 너무 적나라하게 말하니까요. 그래서 되도록 회의시간에도 듣기만 해요."
내 과오가 떠올랐다. 나도 말 잘한다는 소릴 들어왔다. 학교에서는 소위 '교육 용어'로 발표 잘하는 어린이였다. 선생님들은 내가 말하면 핵심을 잘 지적한다고 칭찬하셨다. 친구들은 내가 일어나서 책을 읽으면 자연스러워 듣기가 편하다고 했다. 자연히 수업시간이 즐거웠다. 수업시간엔 대부분 아이들이 발표를 꺼려하기 때문에 내가 제일 많이 말하기도 했다.
대학시절 방송반 활동을 하면서 말 잘하는 사람의 여정을 더욱 발전시켜나갔다. 그런 자신감은 사회에 나와서도, 연애를 할 때도 결혼생활에도 적용이 되었다. 연애할 땐 내가 대화를 이끌어갔다. 남자들은 말하는 걸 귀찮아해서 오히려 좋아했다. 하루 종일 쫑알쫑알 대는 게 귀엽다고까지 했다.
결혼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맘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맘에 들 때까지 삼단논법, 귀납적 추론 능력까지 발휘해서 일장 연설을 하곤 했다. 그 말이 때론 비수가 되어 심장에 날아가 꽂히기도.
남편이 하루는 나에게 말했다. 내 말은 무기라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아무리 말을 해도 고쳐지지가 않으니 나는 반복까지 했던 것이다.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인데 듣기 싫은 잔소리에 무한반복 재생 구간을 만들어놓았으니.
20년이 넘는 결혼생활을 하며 깨달은 건 바로 이것이다. 사람은 절대 잔소리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침묵이 효과가 있다. 많은 걸 가득 담은 눈빛과 함께. 어제 남편이 바지를 옷걸이에 걸어놓지 않고 대충 던져 놓았다. 전 같으면 "또 이랬어. 누군 맨날 치우고 누군 맨날 어지르고. 똑같이 일하면서 너무 불공평한 거 아냐?" 했을 텐데.
어젠 그러지 않았다. 그저 차분하고 나직한 음성으로 한마디 했을 뿐이다. "오늘 당신 피곤했구나. 이 바지가 옷걸이까지 가지도 못 했네."(오히려 살벌한가?)
그러자 남편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얼른 옷걸이에 걸었다.
최근 부정적인 말을 줄이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고 말보다는 행동을 보여주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다. 특히 아이들에게.
지금까지 나는 말을 할 때마다 내 입장을 잘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왔다. 때에 따라 적절히 비유를 섞고, 내 기분, 내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또 그에 알맞은 결론을 내는 걸 말 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것으로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다. 진짜 말을 잘하는 사람은 오히려 말을 적게 하되, 기억에 남을만한 감동을 준다. 말로 사람을 죽인다는 건 사실이었다. 특히 요즘 인터넷 댓글들.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말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차라리 말은 자국이 남지 않지만 악성 댓글은 계속해서 인터넷 상에 남는다.
최근 비의 1일 1 깡이 유행이었다. 유튜브 댓글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진짜 똑똑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쩜 그렇게 기발한 말들을 할 수가 있는지. 다만 그 유려한 말솜씨가 단순한 유머나 덕담이 아니라, 부정적인 칼날로 향했을 때 그 효과도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기발함'이 '잔인함'으로 뒤바뀌지 않아야 할 텐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말이 좀 어눌하더라도 남에게 상처 주지 않는 사람이 더 좋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