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

'나 혼자 산다'에서 얻은 교훈

by 허윤숙

'혹시 나는 작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지가 무슨 대단한 작가라도 되나?'

하고 몸을 틀기 전에 심호흡 한번 하기를.


대단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대단히, 대단치가 못 해서 그렇다는 말이니까.






글을 쓸 때 "나 잘 났소." 할 때는 서너 줄 쓰면 더 이상 쓸 거리가 없어진다.

반대로 "나 못났소." 할라치면 샘물처럼 이야기가 솟아난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잘 난 사람 이야기는 읽을수록 속이 뒤틀린다.

'그래서 뭐 어쨌다고? 머리나 인물, 집안을 타고났구먼. 나 같은 사람은 어쩌라고?' 하게 된다.

하지만 못 난 사람의 실수담을 계속 읽다 보면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다가 쪼끔이라도 잘된 것을 보면 내 자식 일인 것 마냥 흐뭇해진다.


그런 면에서 나에겐 누구보다 할 이야기가 많다. 어릴 적 못난이 시절 이야기부터 자존감을 땅에 질질 끌며 다니던 20대 시절 이야기, 또 남편 사업이 부도나서 고생한 이야기 등등. 몇 날 며칠 자판을 두드려 대도 속이 시원찮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못났고 지금도 여전히 못 나서, 심지어 내가 나를 떠나고 싶은 점이 있다. 바로 말실수를 많이 한 다는 것. 여기에는 많은 것이 협력한다.


조급함, 변덕스러움, 신중하지 못함. 좋게 말해서 사교적이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또 있다. 지루한 걸 못 참는 성격이다. 같은 말이라도 다 틀리게 표현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성향은 시험을 칠 때도 작용한다. 초등학교 2학년 시험 때다. 수업시간에 돋보기에 대해서 배웠다. 그리고 곧바로 쪽지 시험을 보았다. 거기서 많이 틀린 아이들은 남아서 재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 학생들에는 나도 섞여 있었다. 재시험은 똑같은 문제였다. '사물을 크게 보는 기구는?'이 문제였다. 그런데 뻔한 정답을 쓰기가 싫었던 나는 어디서 주워들은 말을 생각해 냈다


바로 '현미경'이라는 말이다. '돋보기'라는 말은 촌스러운데 현미경이라는 말은 있어 보였다. 그래서 현미경이라고 썼다. 엄밀히 말해서 오답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교육과정상 현미경은 아직 배우지 않은 단어이므로 괘씸죄에 해당했다. 결국 오답 처리되었다. 그 결과 다른 아이들이 다 가고, 나 혼자 남아서 또다시 시험을 치러야 했다.


속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현미경이 사물을 더 크게 볼 수 있는 기계인데... 아직 안 배웠다고 틀렸다고 하는 건 너무 한 거 아닌가? 나는 교과서가 아니라 집에 있는 동화책에 나온 걸 미리 알고 있을 뿐인데.


그런데 이렇게 다른 말(재미있는 말)로 표현하는 게 습관이 되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최근 많아진 리얼리티 프로그램 중에서도 탑 오브 더 탑이다. 여기선 민감할 수 있는 출연자들의 실수를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안 84가 공황장애를 앓는다는 사실을 말하고, 그것도 모자라 시상식 직전 약을 먹는 장면을 보여줄 정도.


기안 84는 무대에서 긴장하는 바람에 말실수를 하곤 한다. 특히 연말 시상식에서 헨리에 대해 한 말실수 때문에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창작활동을 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뻔한 수상소감을 말하는 건 자신의 도리가 아니라 생각했을 것이다. 식상한 만화는 금세 외면받으므로. 조금 더 기발하고 진솔하고 재밌는 수상소감을 고민했을 것. 그러다 보니 오버가 생긴다.


시상식이 지난 후 '나 혼자 산다'에서는 그 아픔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주었다. 말을 잘하기로 유명한 전현무가 기안 84랑 그 영상을 함께 보면서 말하는 법에 대해 코치를 해준 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영상으로 다시 보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이다. 기안 84는 자신이 한 실수 장면을 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때 전현무는 따뜻한 공감의 말을 건넸다. 자신도 말실수를 한 적이 있다고. 그의 말실수는 그가 했던 수많은 히트작들에 비해 소소할지 모른다. 하지만 대중은 백번 잘해도 한 번 실수에 돌아서기도 하니. 대중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전현무는 기안 84에게 따뜻한 충고를 해 준다. 아니 충고라기보다는 자신에게 하는 참회에 가깝다.


그는 말한다.

말을 조금 더 재치 있게 하려는 욕심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차라리 말을 좀 재미없게 하더라도 상처가 되는 말은 하지 말라고.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말 잘하고 브레인인 그다. 그가 다른 것도 아니고 말에 대해 반성을 하다니. 그의 솔직함에 박수가 나온다. 그리고 이는 나를 두고 한 말 같았다. 평소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되지도 않는 개그 욕심을 부리는 나.


첫 책이 나올 당시 책을 낸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해 있었다. 되도록 재미있는 사례를 넣으려 했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었다.


실명을 거론한 것도 아니고 내용도 살짝 비틀어서 누구인지 모르게 썼는데도. 본인은 귀신같이 알아챈다.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왜 자기 이야기는 안 썼냐고. 마치 방송 출연한 것 마냥 자기 이야기도 써 달라고 조른다. 결국 다음번에 꼭 넣어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내고야 만다.






먹고살 만 해진 요즘은 사람들의 인권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말 한마디에도 집단이 아닌, 개인을 생각해야 한다. '나 혼자 산다'는 그 프로그램 제목이 주는 뉘앙스부터 그렇다. 나. 혼자. 산다. 세 단어 모두.


'우리'나 '네'가 아닌 '나'가 중요하고, '같이'가 아닌 '혼자'인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어제나 내일이 아닌 현재, 오늘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이전에 비해 개인 한 명, 한 명을 존중하는 시대다. 이는 특별한 상황, 즉 남을 웃겨야 하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전엔, '남을 웃기는 일이라면 뭐...' 하면서 다소 너그러웠다.


요즘은 활동을 그만두었지만 예전에 잘 나갔던 개그맨이 있다. 그는 패널을 무시하는 스타일로 유명했다. 그는 패널이 하는 말을 무조건 반박하고 본다. 그것도 심한 무안을 주면서.


그 무안을 딛고 말을 이어가는 사람만 토크에 참여할 수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카메라를 한 번도 비춰주지 않았다.


그땐 사회분위기 자체가 패널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식이 적었다. 그 뒤로 패널을 존중해주는, 예를 들어 유재석 같은 사회자가 나타나 인기를 끌게 되었다. 개그가 반드시 상대방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야 흥행하는 건 아니었던 것이다.

유재석은 남이 아닌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상황이 많다.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낼 때 패널들은 무장해제된다. 이렇게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든 후, 자신은 튀지 않으면서 분위기를 밝게 유지한다.


그 비결로 타고난 인간성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오랜 무명시절이 가져다준 겸손이 아닐까 한다. 그 겸손은 인기에 체하지 않도록 그를 붙잡아준다.


당장 누군가를 저격하거나 자극적인 말로 좌중을 웃길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어느 누구도 소외되거나 상처 입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은 토크쇼에서만 요구되는 미덕은 아닐 것이다. 평소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이런 자세는 꼭 필요하다.


나야말로 그렇다.

최근 내가 누군가를 개그 소재로 삼아서 좌중을 웃긴 일은 없는지 뼈아프게 반성해보고 있다.





이미지 사진: 픽사 베이






keyword
이전 12화말을 잘하면 실수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