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미니멀리즘

'진짜로' 말하는 재능이 있다는 것은

by 허윤숙

가끔 방송에 저장 강박증 환자들 이야기가 나온다. 집안 곳곳이 쓰레기로 가득 차 있어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는 사람들.

그렇게 되기까지 주위 사람 방문도 없었나? 하긴 그랬다면 잔소리라도 해서 치웠을 것. 주변에 사람이 없는 외로움이 그 증세를 일으킨 원인이었을 수 있다. 가까운 친구, 이웃이나 친지가 없으니 외롭고, 그 허전함을 물건으로 에워싸여 삶으로서 메우려 했을 수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까딱 잘못하면 일반인도 그렇게 된다. 사도 사도 채워지지 않는 가슴의 옷장, 그릇장들.

아무리 사도 아침에 출근하려면 옷이 없다. 아무리 갖추어 놓아도 막상 손님이 서너 명 올라치면 내놓을 그릇이 없다.


허전한 영혼을 가지고 있으면 이렇게 늘 마땅치 않은 상황이 일어난다. 그 '마땅치 않음'은 위 속도 마찬가지다. 밥을 먹어도 뭔가 허전해서 후식을 먹고 또 입이 심심해서 커피나 군것질을 한다. 이렇듯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는 물건을 자꾸 사게 만들고 집안을 온통 예쁘고 쓸모없는 쓰레기로 가득 채운다. 경증 저장강박증이 일어나는 것이다.


허전함을 메우는 방법 중에 '말'도 있다.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거나 남에게서 칭찬을 유도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거나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의 비판이나 칭찬에 휘둘린다.


내면의 빈약함을 값싼 말로 채우는 격이다. 부끄럽지만 아주 최근까지도 나는 남의 칭찬에 일희일비했다. 지금도 완전히 초월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졌다.


그 누구의 칭찬도 필요 없고 비난도 거슬리지 않는 순간. 나에게 딱 한번 그런 순간이 있었다.

대학 3학년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교육심리학 시간이었다. 교수님이 과제를 주셨다. 개인별로 교육심리학 책 한 챕터씩 분담을 시키고 그 내용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발표 시 즉석에서 성적을 매긴다고 예고를 하셨다. 못하면 '수고하셨습니다=C학점', 보통이면 '잘하셨습니다=B학점', 아주 잘하면 '매우 잘하셨습니다=A학점'


이렇게 '즉결심판'이 이루어지는 거다. 다소 잔인한 학점 매기기에 학생들은 치를 떨었다. 제대로 준비를 못 해 오면 즉결 처형이 되는 셈이니. 교육심리학이 3학점 짜리라 더욱 그랬다.

반면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적성에 맞지 않는 다른 과목에 비해 교육심리학은 재미있게 듣고 있던 터였다. 이에 과제가 떨어진 날부터 과제 분석에 들어갔다. 그 후 몇 날 며칠을 꼬박 새우다시피 준비를 한 나는 발표 시 아주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학생들이나 교수님 눈을 일일이 바라보았다.

내 발표가 끝나고 나서 다들 긴장을 하며 교수님 입만 바라보았다. 그때 교수님은 한참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여셨다. "매우 수고하셨습니다. 이렇게 까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다들 웅성거렸다. '수고하셨습니다.'도 아니고, '매우 수고하셨습니다.' 라니. '수고하셨습니다'는 C학점인데 '매우' 자가 들어가니 헷갈린 거다.


평소 부정적으로 말하는 친구들은 C학점을 받은 줄 알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개중에는 발표를 잘했다며 나중에 좋은 결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겉으론 실망한 듯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론 달랐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이번에 최선을 다했고 그 챕터를 완전히 이해했으며 발표도 막힘없이 잘했다. 그러니 평가가 잘못 나온다 해도 상관없다. 그건 교수님 잘못이다. 왜냐하면 나는 날 믿으니까.'라고.


그래서 꽤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다른 과제 발표 시완 사뭇 달랐다. 그 전엔 친구들에게 칭찬을 구걸하고 친구가 부정적으로 말하면 의기소침했다. 그러나 '칭찬 구걸' 따윈 필요 없었다. 나로서도 충분히 꽉 차 있으니.


그리고 친구들의 우려와 달리 학기말 성적에서 내 교육심리학 학점은 A+였다. A+ 학점은 나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수님은 내 발표에 만족한 나머지 사전에 공지했던 평가 기준에 없던 말이 무의식 중에 튀어나왔던 것이다. 나는 그걸 느꼈다. 그러니 불안하지 않았고,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그때만큼 완벽한 나를 느낀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처럼 '완벽한 순간'에는 공식이 보인다. 아주 간단하다.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에
몰입하는 것


이렇게 간단한 것이 그렇게 어려웠다니.


나는 당시 흥미 없던 다른 과목에 비해 교육심리학만 재미있었다. 그러니 최선을 다했고 결과적으로 잘하게 된 것이다. 그 공식에는 어떤 것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 설사 누가 나를 흔들어 댈지라도.


무언가의 결과를 남에게 확인받고 싶을 때가 있다. 영락없다. 그 일에 준비가 덜 되었거나 하기 싫거나 아무리 해도 내 능력으론 안 되는 일이다.


반면 그 삼박자가 착착 맞아들 땐, 말을 덜어내는 순간이 온다. 칭찬도 필요 없고 비난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무엇보다 내가 하는 말이 줄어든다. 내 주변에 말을 쌓아두는 것도 일종의 외로움 내지는 불안감 때문이 아닐까? 내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고, 나에게 격려해달라고 은근히 종용하는 말 말이다. 또 비난조의 말은 좋은 말로 바꿔주길 기대하는 말, 말, 말


어제 유재석 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금손'이 주제라 여성 손 모델이 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름다운 외모와 손을 가졌다. 이때 유재석 씨가 대화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어떻게 말을 비워내는지 알게 되었다.


다른 진행자 같으면 호들갑을 떨면서 자신의 유머를 뽐내는데 혈안이 되었을 듯하다. 그런데 유재석 씨는 방송인이 아닌 그 모델이 편안하게 느끼는 데에 집중하는 게 보였다. 진행자의 현란한 드립에 자칫 출연자가 주눅이 들 수도 있는데.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도 출연자가 돋보이게 완급 조절을 했다. 그래서인지 방송이 끝나고 나자 유재석 씨는 기억에 안 남는다. 오로지 출연자가 했던 말이나 아름다운 손, 행동만 인상 깊게 남았다.


다른 때와 다르다. 다른 유명 MC들은 대개 현란한 드립으로 한바탕 폭소를 유도하곤 한다. 출연자는 그 드립의 수준을 못 쫓아가니 그림처럼 앉아서 간단한 리액션만 하기 일쑤. 반면 어제 유재석 씨의 진행은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를 유도하고 쓸데없는 말로 주위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절제력이 돋보였다.


유재석 씨는 자신을 그림자처럼 숨기고, 상대방 매력을 끌어내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사실 그건 '재능'이 아니라 '태도'일지도. 다들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자 혈안이 되어있는 데 말이다. 속이 꽉 차있는 사람은 굳이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지 않는다. 자칫 속없는 사람처럼 보이거나 자충수가 되기도 하니. 이는 평소 남을 배려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내공이기도 하다. 즉 상대방을 우선시하고 자신은 겸손하게 물러나 있기. 이는 순전히 '말을 비움'으로써만이 가능하다. 이야말로 진짜 말을 잘하는 사람이 가진 능력인지도.


문제는 '말을 적절히 비우는'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거다. 하긴 우리는 하기 쉬운 걸 하는 사람에게 '능력 있다'라고 말하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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