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해 보이지 않으려면
말투로 읽는 착함의 '속 살'
'착하다'는 말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친절하게 대해주다가도 '착해 보인다'는 말을 들으면 홱 돌아서고 싶다. 그런데 나이 들어 보니 내 '착함'에 모순이 보인다. 내가 착했던 것, 혹은 착하다고 생각했던 것의 오류가.
나의 '선함'은 동화책의 영향이다. 어릴 적 읽은 동화책은 우리나라 전래동화부터 서양의 명작동화까지 죄다 권선징악적인 내용이라. 독서가 좋았던 터라 많은 책을 읽었다. 착하려고 노력한 것은 '기복신앙'과도 같은 거였다. 어린아이 딴에 '처세술'이었던 셈.
내적인 만족감, 내지는 선함의 본질에 충실했다면 마음가짐이 달랐을 터이다. '어설픈 착함'은 말투로 남아있다. 다분히 보상심리가 배어 나오는 말투. 예를 들어, 뭐든 확인한다. 남편에게 "나 잘했지?", "이거 맛있지?", "나처럼 요리 잘하는 여자랑 사는 기분이 어때? 진짜 궁금하다."
덕분에 매일 꼴사나운 질문 독박을 쓰는 남편. 유치하기도 하다. 아이들에게도 그렇다. "네 주변에 나처럼 성적 스트레스 안 주는 엄마 있니?", "네 친구 엄마들은 내 나이까지 일하니?"
모든 질문은 '나처럼 착하고 요리 잘하는 부인이 없다. 복 받은 줄 알아.'(사실 그 복은 내가 받았어야 하는데...)라는 속마음을 품고 있다.
'엄마 나이까지 돈 버는 게 쉬운 줄 알아? 진짜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그러니 집안일 좀 도와주렴.', '엄마가 성적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속으로 얼마나 도를 닦는지 아느냐?'
남들에게는 차마 이 정도로 노골적이진 않지만,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직장 동료들에게까지 틈만 나면 내 '선행'을 확인하려고 기회를 엿본다.
'착하다'의 반대말은 무얼까? '못되었다'일까? 예전 같으면 그랬겠지만 지금은 '쿨하다'가 더 맞을 것이다. '착하다'는 말은 우유부단하고 남에게 맥없이 퍼 주는 사람에게 어울린다.
'쿨하다'는 말에는 주도성이 느껴진다. 남에게 잘해주기도 하지만, 손해를 보면서까지는 아니다. 자기 영역을 침범당하지 않는 선에서만 잘해준다.
'착하다'의 유사어는 무얼까? '인간성이 좋다.' '선하다.' '공감능력이 좋다.' 등등은 아닌 것 같다. 가장 유사해 보이는 말은 만만하다.이다. 원조 '착한 여자'인 나는 과거에 과연 착했던 걸까? 생각해 보니 그건 착한 게 아니었다. 복을 받기 위한 '장치'로 남에게 나를 맞춘 것일 뿐. 자발성이 없었다. '비자발성'이 문제가 되는 지점이 있다. 바로 나 자신에게는 결코 착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덕목 중 가장 대표되는 가치는 무얼까?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와 '남을 용서하라'가 아닐까?
이 두 가지 가치, 즉 사랑과 용서에는 양면성이 있다. 즉 남을 사랑하기 이전에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건 고기 맛을 모르는 스님이 고깃집을 차리는 것만큼 어불성설이다. 자길 사랑하는 것이 차고 넘치면 남을 사랑하는 건 쉽다. 또 누군가를 미워하면 미움을 받는 사람은 괴롭지 않다.(미움을 당하는 것 자체도 잘 모른다.) 미워하는 나 자신만 힘들다. 결국 나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 남을 사랑하고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즉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다. 이는 고스란히 말투로 드러난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겐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단호함'이 있다. 단호한 말투에는 몇 가지 원칙이 보인다.
첫째,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평소 자신에 대한 남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남의 평가에 민감하지만 특별히 누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하면 못 견뎌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모두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하지 않아서다. 누가 뭐래도 자신을 믿는다면 이런 것에 흔들리지 않는다.
둘째, 자신을 비하하지 않는다.
자신을 비하하면서 남이 자신을 존중하길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자신을 내세우는 것도 꼴불견이지만 자신을 낮추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보기 불편하다. 자신을 비하하는 사람은 뒤에서 남도 비하할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종종 모멸감에 빠진 걸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데 그걸 드러내고 상대방이 아니라고 자기를 안심시켜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걸 알면서 장단 맞추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신이 멘털 단속하는 것도 남의 손을 빌려야 하다니.
셋째, 칭찬에 흔들리지 않는다.
남들이 진심으로 말하든 인사치레로 말하든 칭찬을 들으면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간간이 미소를 지으면서 감사 표시만 할 뿐. 만약 날아갈 듯이 기뻐 날뛰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떻게 될까? 전에 희대의 사기꾼을 본 적이 있다. 그 사기꾼에게 걸리면 당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는 치밀하고 머리가 좋으며 언변술이 뛰어났는데 그 사기꾼이 가장 잘하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어쭙잖은 칭찬의 남발이다. 칭찬을 마구 던졌다. 그리고 그 칭찬을 받는 사람의 그릇을 보고 사기를 칠지 결정하는 듯했다. 즉 칭찬을 듣고 부화뇌동하는 모습이 보이면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요지부동이면 깨끗이 포기한다. 칭찬에 울고 웃는 사람은 멘털이 약하고 자존감이 약하다.
만만해 보이지 않는 것, 그것은 말투로 가능하다. 말투가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착한 게 아니라 만만한 사람이었다는 것, 최근 그것을 깨닫고 나자 나에게 더 잘해주게 되었다. 그동안 방치했던 '나'를 다시 끄집어내고 먼지를 털고 햇볕에 쪼이고. 이제 나에게 더 잘해줄 테다. 그것이 남에게도 편하고 합리적이다. 그동안 착각했던 시간이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