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력 있는 말투

대형병원 의사들이 원래부터 실력이 더 좋은 걸까?

by 허윤숙

이런저런 피부병을 달고 산다. 피부과에 가면 대부분 내 증상을 보고 놀란다. 원인은 물론이고 피부병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그들이 해준 처방약도 안 듣는다. 대형병원에서 진료하려면 조퇴를 하고 하루 종일 기다리고 수속 밟는 게 귀찮았다. 그래서 동네에서 간편하게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결국 대형병원으로 다시 간다. 그때 의사들의 노련한 말투는 내게 안심이 된다.

"충분히 이럴 수 있어요. 건조하면 일어나는 증상이에요. 약 먹고 연고 바르면 돼요. 평소 보습에 신경 쓰세요."

여기서 내가 기쁨을 느끼는 말은 "이럴 수 있어요."다. 나는 이럴 수 없는 줄 알았으니.


전에는 한의원이나 피부과 등을 전전해도 이렇다 할 말을 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겁을 주었다. 괴질을 달고 왔다느니, 이런 피부는 처음 본다느니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크게 상심한다. 내가 죽을병이라도 걸린 건 아닌가 하고.


그러면 대형병원 의사들이 개인병원 의사들보다 학벌이 뛰어나다거나 학위가 더 많아서 그럴까?

오히려 개인병원 의사들의 학벌을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차이는 그들이 대하는 질병의 범위다.

개인병원에서는 흔하고 작은 질병을 주로 치료하게 된다.


대형병원에서는 거기서 해결 못한, 굵직한 질병의 주인공들만 대하는 셈이다. 자연히 각종 질병을 두루 섭렵한다. 그러니 웬만한 증상을 보고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것.


고난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도 똑같다. 크고 작은 시련을 넘어서 본 사람은 웬만한 일이 생겨도 슬기롭게 잘 대처한다. 하지만 평생 우물 안에서만 살았던 사람은 작은 고난이 닥쳐도 어쩔 줄 몰라한다.


이는 고스란히 말투에서 배어 나온다. 작은 일만 생겨도 난리를 친다. 어떤 여자는 작은 하루살이 같은 것만 몸에 달라붙어도 소리소리 지른다. 그냥 털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그들이 주로 하는 말투는 이렇다.

"어머. 세상에"

"어쩌면 좋아."

"어떡해."

"큰일 났네."


반면 그릇이 큰 사람은 다르다. 전에 남편을 일찍 여의고 혼자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분과 대화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내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로 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 괴로워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말하길,

"충분히 그럴 수 있어."

"괴로워할 필요 없어. 그 정도면 최선을 다 한 거야."

"나 같아도 그랬을 거야."

"그 마음 나도 알아."

"나도 그런 적 있어."

이 정도 말을 듣고 나면 나 자신이 썩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진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도 나 같은 실수를 하고 고민하며 사는구나 하고. 정말로 그가 나 같은 실수를 한 적이 있거나 아니면 다른 이들의 경우를 빗대서 말하는 걸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런 말을 들으면 위로가 된다.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해서.


그는 그런 포용력이 어떻게 생겼을까? 그에겐 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난 후의 깨달음과 많은 사람을 만나서 다져진 내공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련이 닥쳐도 다 같지는 않다. 그 시련을 흘려보내거나 오히려 그 시련에 이용당하여 악인이 되기도 한다. 같은 고난에도 어쩜 그리 다른 대응이 나오는지. 결과적으로 같은 현상에 다른 말투가 만들어진다.


과연 나는 어느 쪽일까?

당연히 '내공 있는 사람, 포용력 있는 말투 편'에 서고 싶다.

어떤 질병을 보고도 덤덤히, 그 대형 병원 의사처럼 말하는 거다.

"충분히 이럴 수 있어요. 그리고 뭐 이 정도는 별거 아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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