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언증을 고치려면

그나마 글을 쓰면서 '말'을 줄였다.

by 허윤숙

요리나 의학 관련 유튜브를 많이 본다. 재미없는 경우라도 건질 게 있어서다. 그런데 댓글에 꼭 나오는 내용이 있다.

"뭐야? 서론이 너무 길잖아. 본론부터 말하지."

아니면 한 술 더 떠서는,

"결론부터 말하면 되지 말이 왜 이렇게 길어?"

하는 것. 정작 의학 관련 내용은 서론, 본론, 결론을 다 알아야 신뢰가 간다고 할 거면서.







다들 마음이 급한 것이다. 볼 영상은 넘쳐나는데 다 비슷비슷한 것 같아서. 구독할지 말지 빨리 결론 내려한다. '긴 말은 필요 없다.'이다. 모든 매체는 모습만 다를 뿐 한 군데서 출발한다. 바로 '말'이라는 본류다. 유튜브도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책도 포스터도 결국 '말'을 하고 있는 것. 자막이나 대사가 없이 그림만 있는 경우도 결국은 그림으로 '말'을 전한다. 그 말이 길면 짜증을 낸다. 피 같은 시간을 낭비하니.


'허언증'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람들이 더 싫어하는 게 있다. '다언증'이다. 말이 많으면 시간낭비, 집중력 낭비를 부른다. 그러니 누구나 말은 짧게 하길 바란다.


슬프게도 이 다언증이 나에게 있다. 아주 오래된 거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심해지려 한다. '소언증'을 가진 사람도 나이가 들면 다언증으로 바뀌다 보니. 나이가 들면 왜 말이 많아질까? 아는 것이 많아서 할 이야기도 많기 때문일까?


나이가 들면 어디서나 자기가 윗사람에 속하니 가르쳐 줄게 많다고 느낀다. 금쪽같은 인생의 지혜나 생활 팁 같은 것들. 말을 자세하게 하거나 했던 말을 또 하니 듣는 사람이 몹시 피곤하다. 다언증에 허언증까지 있으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친구가 한 명이라도 남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 다언증을 고칠 수 있을까?


효과를 본 방법이 있다. '말' 대신 '글'을 쓰는 것이다. 말이 많다는 건 생각이 많다는 뜻이니 글로 써보는 것이다. 써놓고 나면 보인다. 평소 쓸데없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주옥같은 말만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행운아다. 그대로 밀고 나가도 괜찮지만, 그럴 리가. 사족의 남발이다. 정신이 번쩍 들어 평소에도 조심하게 된다. 특히 초고는 눈뜨고 봐줄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퇴고를 거듭한다. 그러다 평소 덜어내며 글을 쓰는 나 자신을 본다.


이는 말에도 적용된다. 마치 퇴고와 초고를 한방에 끝내려는 듯 깔끔하게 말하고 싶어 진다. 말은 퇴고를 할 수 없다. 내 말을 듣는 사람은 쓰레기 같은 내 초고만 듣는 셈. 낮에 했던 말을 떠올리며 밤에 이불 킥 하는 건 순전히 내 몫이다. 상대방은 또 무슨 죄인가? 재미도 없는 말을 한참이나 듣다니.


이런 만행을 방지할 수 있다. 말을 할 때도 글을 쓴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면 좀 더 세련되고 간결하게 말하게 된다. 머릿속으로 주제 있는 글을 한 편 쓰는 것이다. 말을 할 때는 주제가 선명해야 알아듣기 편하다. 글을 쓰면 이로운 점이 많지만, 특히 말을 잘하게 한다. 글로 쓰면 내 생각이 선명해지니. 내가 쓴 글이지만 글이 나를 돕는 것이다.


글이 나를 가다듬는다.



무엇보다 꼭 할 말만 하는 것. 그게 말 잘하는 사람의 요건이 아닐까. 전에는 달랐다. 글은 만연체가 흔했고, 반복, 강조하는 말이 많았다. 웅변대회에선 힘주어서, 자꾸자꾸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요즘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단어 하나하나에 센스가 넘친다. 핵심만 간략하게 꼭 집어서 말하니 귀에 쏙쏙 박힌다.


젊은 시절부터 우아한 중년을 꿈꾸었다. 이에는 필수항목이 있었다. 말수가 적고 우아한 단어로 임팩트 있게 말하는 것이다. 반드시, 언젠가는 될 것이다. 나는 뭐든 될 때까지 해 보는 '노력형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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