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닮았다는 말

:플러스도 아니고 마이너스도 아닌, 마이너스 제로라고나 할까?

by 허윤숙


하루는 친구가 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못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동안 아들과의 관계가 싸늘해졌다고.


한창 연애 중인 아들 입장에서는 여자 친구가 무조건 예뻐 보인다. 그런데 믿었던 엄마가 그런 말을 하다니...


그런데 이렇게 사람 얼굴을, '예쁘다, 못 생겼다.'라고 말하는 것만 상처가 될까?


말을 하고 나서 상대방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종종 그 원인을 알 수가 없다. 내가 많이 했던 실수가 있다. 바로 상대방에게 '누구 닮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단순한 성격을 가진 사람(울고 싶지만 내 경우다.)들은 다른 사람 얼굴의 특징을 잡아서 '누굴 닮았다'라고 말할 때가 많다.


닮은 대상이 연예인인 경우, 무조건 기분이 좋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연예인이 불미스러운 일로 연루된 경우엔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결국 민감한 것이, '그' 누구의 얼굴이냐다. 그가 맘에 드는 사람이라면 상관없지만 평소 싫어하던 사람이라면...


사람 얼굴에 대해서 '예쁘다'는 말이 +고, '못 생겼다'는 말이 -라면, '누굴 닮았다'는 말은 어떻게 될까? 의외로 딱히 -는 아니더라도 마이너스 제로(-0: +도 -도 아닌, 중립적인 듯 하지만, 괜히 기분이 묘하게 나쁜 경우에 해당하는 듯)쯤 다.


여기 자긴 충분히 +라고 말하는 경우에도 상대방에게는 -가 될 수 있다는 데 함정이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최고 미녀, 미남 배우를 닮았다고 말해도 마찬가지다. 유난히 개성이 강한 성격을 가진 경우엔 발끈한다.

자기보다 나이가 든 여자배우를 예로 들 경우엔,

"내가 그렇게 나이가 들어 보여요?"

키가 작은 여자 배우일 경우엔,

"키가 그렇게 작아 보여요?" 등등.


기껏 칭찬한 사람은 당황할 수밖에.

'난 그 정도로 예쁘다는 말을 한 건데, 나보고 어쩌라고?'









한 지인이 오래전 나로 인해 상처 입었던 이야길 들려주었다. 약간 농담 식으로 말했지만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내가 지인에게 한 연예인과 닮았다고 말한 것이다. 그 당시 그 연예인이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자긴 기분이 무척 나빴다는 것이다. 나는 그 연예인이 눈이 크고 몸매가 예쁜 데다 발랄한 부분이 좋아 보였는데...


이런 실수는 종종 일어난다. 누구를 닮았다는 말에는 일종의 '과잉 일반화'가 들어가 있다. 예를 들어 눈이 크다, 코가 높다. 뚱뚱하다. 내지는 얼굴이 유난히 작다. 등등. 그런데 듣는 사람에 따라 나쁜 점을 먼저 떠 올리기도 한다는 것.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고 말하는 배려심이 필요한 순간이다.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그 배려심이 부족했다. 학기 초 학급 담임교사가 학생들과 면담하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담임 선생님은 번호 순서대로 차례차례 면담을 이어가셨다. 그런데 내 차례가 오자 선생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 아까 면담했잖아?" 하시는 거다.

그래서 내가

"네? 저 아직 안 했는데요?" 하자, 번호를 확인하시더니,

"아차. 내가 헷갈렸구나. 아까 **랑 면담했는데 너랑 너무 닮아서 그 학생이 또 왔는 줄 알았네."

담임선생님은 한바탕 웃으시며 변명을 하셨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말씀하신 여학생은 내가 싫어하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평소 잘난 척이 심했고 집이 잘 사는지 부자인 티를 내고 다녔다. 내가 보기엔 눈이 크고 쌍꺼풀이 굵다는 것 외에 나랑 닮은 부분도 없어 보였다. 나보다 몸매도 날씬하고 얼굴형도 더 갸름하니, 어떤 면에서는 내가 기분이 좋아야 했다.


하지만 성격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이렇듯 누굴 닮았다는 말은 사람에 따라 신중하게 해야 한다. 자존감이 높고 외모에 특별히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외모에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그릇이 작아서 그렇다고 단순히 잘라서 말할 수는 없다. 말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그릇 용량을 일일이 계량해서 말할 수도 없고.


만약 어떤 말을 해도 다 받아줄 것 같은 사람을 두고,

"저 사람은 그릇이 커. 내가 심지어 돼지 같다고 놀려도 허허 웃을걸?"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가 겉으로 웃는다고 해서 웃는 게 아닐 수도 있다.

화를 내는 게 더 자존심이 상해서 참고 있을 수도.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의외의 면에서 싸움이 번지는 경우가 있다.


작년에 중학생이 옥상에서 투신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적이 있다. 그 학생은 집단폭행을 당하고 있었고 그 폭행을 당하게 된 이유가 어이없었다. 가해 학생 중 한 명에게 피해 학생이 한 말 때문인데, 그 말은 가해학생 아빠가 유명 bj를 닮았다고 말한 것이다.

그게 죽도록 때릴 이유가 되다니.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그 bj가 학생들 사이에서 초통령 위치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고 돈도 잘 벌어서 유명 연예인 부럽지 않은데.

그를 닮았다는 말이 왜 화가 난 걸까?


말한 학생은 그 bj를 좋아할 수도 있었고 그냥 단순히 외모가 닮아서 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받아들인 학생은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이해할 수가 없지만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을 겪고 나서 더 조심스러워진다. 요즘은 누굴 닮았다는 말이 민감하게 느껴진다. 쉽게 말할 수 없게 된다. 그 말을 듣고 부정적인 쪽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으니.


모든 말에는 항상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이도 저도 아닌, 마이너스 제로상태가 수시로 일어난다.


사소한 농담에도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내 말이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 헷갈릴 때 좋은 방법이 있다.


그냥 안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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