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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Oct 22. 2020

'나'와의 거리 두기

원심분리기에 넣고 이 모든 걸 따로따로 추출해낼 수만 있다면

낯설진 않지만 그렇다고 잘 아는 것도 아닌, 예뻐하긴 많이 부족하고, 미워하긴 짠한 존재. 바로 '나'다.





거리두기 완화 조치가 내려진 후 그동안 닫혀있던 곳곳이 문을 열었다. 이젠 직장 동료들끼리 앉아 이야기할 때도 거리를 두어야 하나 마스크를 써야 하나 헷갈린다. 친밀하다고 해서 바이러스까지 친해질 필요는 없을터.


또한 잘 아는 것은 친한 것과 별개다. 친한 것이 나에게 이롭다는 뜻도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친하게 지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 해로움만 한 가득인 경우도 있다. 그땐 친했던 사람에 대해서만 몰랐던 게 아니다. 친한 사이인 누군가는 그 당시 내 심정과 인격, 환경을 반영한다. 그 시간을 지날 땐 잘 몰랐지만, 멀리 달아나 온 지금 돌이켜 보면 굽이굽이가 내려다 보인다.

'그땐 참 못났었지. 내가 내가 아니었던 것 같아.'

그땐 나랑 내가 밀착되었었다고 느꼈다. 내가 솔직함의 극치를 떨며 내뱉던 말들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 진짜 짜증 나. 뭐 하나 되는 것도 없고, 왜 다들 나만 미워해. 난 이대로 살다 죽는 걸까?

난 진짜 불행해. 운도 없지. 왜 매일 이런 일만 일어나는 걸까?"


그 당시 상황이 진짜로 그랬을까? 아니다.

그 말을 할 당시 기분 탓이었을 수도 있고, 매사 불평을 일삼았던 탓에 상황을 왜곡했던 것이다.

무엇으로? 무지 현란한 '말'로다.


말을 내뱉는 순간 모든 사실은 기정사실처럼 느껴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즐겁다가 한 가지 불쾌한 기억이 불쑥 내 기분을 휘어잡는다. 그 회오리 안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젠가처럼 와르르 무너진다.


"그래 내가 그렇지 뭐. 늘 그랬다니까. 내가 뭐랬어? 난 운이 지지리도 없댔잖아."

나의 상황이 꼭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열심히 설득하는 친구에게 김 빠지는 말 한마디를 툭 던진다.

마치 내가 행복하기라도 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불운 표' 뫼비우스 띠 안에 머무는 게 낫다. 쓸데없는 희망으로 고문당하는 것보다. 그게 그나마 서 푼 남은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 굳게 여기며. 이렇게 삐뚤어지고 차가워진 가슴으로 살 때는 매사에 나쁜 것만 눈에 들어왔다. 그 나쁜 것들은 바라만 보며 그대로 두지 않았다. 말로 확인 사살하고 내가 맞았음을 뿌듯하게 여기기까지 했다.


걸핏하면 값싼 정의감과 피해의식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나의 분노들. 그 분노의 화염에 싸이면 꼼짝없이 불행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결국 모두 '거리두기'에 실패해서다. 나에게 무례한 짓을 한 사람과 나와의 거리 두기,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상황과 거리두기, 하루에도 열두 번 오르내리는 내 기분과 거리두기 등등 말이다. 모두 나와 한 몸으로 뒹굴던 것들이다. '나'와 내 상황 심지어, 내 기분을 떼어놓아야 했는데.


그런 증상은 치료제도 없는데 말이다. 면역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전염성까지 있었다. 어쩌면 남에게서 옮아왔는지도 모른다. 부정적인 직장동료나 친구들, 또 뉴스나 우울한 영화나 음울한 미래학 서적들에게서. 그들로부터 받은 영향이 내 안으로 이식되어 자가증식이 일어났다. 마치 코로나처럼 말이다.






올해는 고3 아들과 삼수생 딸, 둘의 입시가 있는 해다. 아무리 의연해지려고 해도 남은 몇 알갱이 영혼 가루까지 탈탈 털리고 있다. 남들 떡은 커 보이는 것인가? 나보다 일찍 입시를 치른 친구들이나 자녀들을 명문대에 철컥 입학시킨 엄마들이 위대해 보인다. 그들은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잘한 것일까? 무엇보다 자식과 거리두기를 잘했을 것이다. 육아기간 동안 아이들의 징징거림도 적당히 커트시키고 말이다.


나는 엄격한 엄마가 아니었다. 징징거림도 다 받아주고 나 자신도 늘 징징거렸다. 그래서 올해 더 힘든 걸까? 뭐든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한 법인데. 이제야 비로소 나와 적당히 거리를 두려 한다. 아이들의 입시 결과에. '그건 아이들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야.' 되뇌면서.

 

'나'와 '상황'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따로따로 추출해 내면 좋겠다. 이번엔 뭐가 추출되어 나올까? 아마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지상 지옥인 대한민국 입시

-법전보다 어려운 대학입시요강

-금수저 부모가 못 된 슬픔

-진짜로 슬픈 건, 그래도 식욕은 줄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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