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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Nov 17. 2020

풍경화보다 상상화 그리기

변화가 많은 시대에 산다는 것

우리 집 만의 풍경은 아닐 것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게. 특히 음식 만들기 등 부엌일은 여자가 월등히 많이 한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있다. 남편이 과일을 깎아 오라거나 물을 떠 오라거나 하는 것이다. 손짓이 더 상처다.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서는 손을 내저으며 나른하게 말한다.


일하고 들어온 부인한테. 그렇다고 남편이 아예 안 도와주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요리에 취미가 있다. 몸짓이 문제다. 그 장면에 기시감이 인다. 명절 때 시댁에 가면 늘 느끼는 게 있었다. 시아버님이 시어머님에게 명령조로 말하는 것이다. 남편의 손짓도 시아버님을 빼다 박았다. 어머님은 그저 묵묵히 수행할 뿐.


남편에게도 불만이 있다. 시댁은 부산이 고향이라 남자들에게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배어있다. 그런데 내가 떠받들어주지 않으니. 충청도인 친정 분위기는 달랐다. 우리 부부는 부모님들을 충실히 따라 하는 '재연 부부'로 산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듯.


이 과정이 풍경화 그리기 같다. 사진을 찍는 것과는 다르다. 같은 풍경을 보고 그려도 보는 각도에 따라, 또 붓 터치 방식이나 그림 솜씨에 따라 만인 만개의 풍경화가 나온다. 예를 들어 시아버님은 어머님을 도와 청소는 하셨지만 부엌에는 얼씬도 안 하셨다. 어머님은 평생 아버님을 두고 어디에도 못 가셨다. 시아버님은 나름대로 선전하신 거다. 아버님의 아버님은 청소마저도 안 도와주셨다고.


그런데 이는 한 세대의 주기가 짧을 땐 문제가 없었다. 수명이 획기적으로 연장되면서 한 세대 텀이 전보다 길어졌다. 전에는 60세까지 살면 장수로 보고 잔치를 벌였다. 4, 50세 이전에 사망했다는 말이다. 그 주기 안에서 변화래봐야 개인의 성향으로 인한 변수 정도. 그런데 이제는 이 풍경화 방식 하나로 버틸 수가 없다. 시대의 흐름에 자기를 맞추어야 한다. 아니면 처치 곤란 꼰대로 산다.


학교 미술시간에 가장 어려운 그림 주제는 '상상화'였다. 이는 레벨이 너무 높아서 대부분 풍경화를 택했다. 초등학교에서는 과학의 날 행사로 상상 그리기 대회를 연다. 이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 머리로 상상한 게 아니라 동화책에서 본 것이나 영화 속 내용을 응용해서 그려낸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하다.


미래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럴 때 공상과학영화를 떠올린다. 이때 영화를 만든 사람은 모든 면에서 선구자가 된다. 외계인을 본 사람이 정말 있을까? 아니면 외계인을 머릿속으로 상상한 최초의 사람만 있을까? 모를 일이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 ET의 모습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 애플사의 작품들은 컴퓨터 공학자가 아닌 기업인 스티브 잡스 머리에서 나왔다. 상상력의 시대다. 그 대가로 막대한 부와 명예를 가지게 된다. 이는 예술이나 사업분야에만 해당될까?


자기가 살았던 시대의 아버지상이나 어머니상, 또는 대학상 모두 시대에 맞추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머릿속에서 그려내야 한다. 그런 사람만이 사랑받을 수 있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자기 역할에도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다. 내가 만약 150살까지 살게 된다면... 그땐 늙은 내 아이들과 조금 덜 늙은 내 손주들과도 함께 잘 지내야 한다. 한 가계 안에 4, 5대가 생존하게 되므로. 지금과는 또 다른 부모상, 조부모상이 필요해진다. 그땐 부모를 보고 그리는 풍경화는 쓸모가 없다. 이제껏 보지 못한 상상화를 그릴 줄 알아야 한다.


문제는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하게 풍경화나 정밀화, 아니 사방 연속무늬를 찍어내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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