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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Feb 17. 2021

사고 또 사고, 버리고 또 버리고

거지도 잘 입는 시대

 어린 시절 맞춤옷만 입었다. 아빠가 섬유사업을 하고 엄마나 이모, 고모가 양잠점을 하셔서다. 그렇다고 해서 근사한 옷을 떠올리면 안 된다. 직선 소매가 달린 통자 원피스를 주로 해 입었다. 의상 디자이너가 실력이 없어선지 대충 만들어서 그런지 옷들이 대략 포대자루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옷감은 어린아이가 입기엔 다소 과하거나 불편한 재질의 옷감이 대부분이었다. 드레이프성이 심한 저지나 고급지고 반짝반짝한 비로도(벨벳)등. 게다가 그 뭐냐, 해양이 연상되는 말미잘이나 해마 문양은 또 어떻고. 기능면에서도 흡수성이나 신축성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옷감이다. 그 옷들은 처음부터 계획된 게 아니었다. 어른 옷을 만들고 귀퉁이에 남은 자투리 천으로 슥슥 오려서 만들던 옷이다.


그렇게 대충 만든 옷을 입고 학교에 가면 창피했다. 정성껏 만든 옷들이라고 해서 괜찮은 것도 아니었다. 디자인이 유난스러웠다. 어른 옷 만들던 디자인을 그대로 적용한 게 문제다. 체크무늬 트렌치코트나 과한 뽕 소매가 달린 원피스 등. 다른 아이들은 가벼운 반바지나 티셔츠 차림인데 나만 나팔바지 등 어른 옷 축소판을 입었던 것이다. 이 옷은 움직임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무슨 옷들이 죄다 백설공주나 소공녀 풍 옷들이라서. 당시 '맘보바지'라 불렸던, 밑단에 뽕이 들어간 바지는 또 어떻고.(그 바지를 입고 간 날은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마법사 같다고 했다.)


그때 작은 소망이 있었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싸구려 티셔츠 같은 걸 입어보는 것이었다. 반대로 다른 아이들은 내 옷을 탐내기도 했다.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입는 건 그나마 잘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잘살아서가 아니라 집에서 남는 천을 활용한 것뿐인데. 사실 그 당시엔 기성복이 많지 않았다. 디자인이라고 해봐야 내복 스타일 변형된 것이나 개량 한복 비슷한 디자인이 전부였다. 지금은 옷을 '산다'라고 하지만 당시엔 옷을 '해 입는다'라고 말했다. 원한다고 시장 가서 옷 한 벌을 뚝딱 사 입는 것이 아니었다. 옷 한 벌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최근 선물로 줄 유아복을 사러 갔다. 백일이 지난 아기에게 입힐 실내복을 사려는데 가격을 보고 놀랐다. 내가 20년 전 우리 아이에게 사주던 가격보다 오히려 더 저렴한 것이 아닌가. 옷감 재질이나 색상 디자인 등은 예전보다 훨씬 좋은데도. 2, 30여 년 시간이 지나는 동안 집값이나 차비, 식비 등은 몇 배로 뛰었다. 그런데 옷값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느껴진다. 이유가 뭘까. 그동안 우리나라 의류사업이 특별히 발전해서일까. 아니면 전 세계적으로 공산품들이 과잉 생산되어 공급단가가 낮아진 것일까. 원재료값은 분명 올랐을 텐데.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소비자의 의류 구매 욕구 상승, 그에 따른 대량생산, 대량 소비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요즘은 아무리 거지라도 옷은 잘 입는다.



예쁜 옷에 대한 욕구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뭐라 할 수는 없다. 내 돈 주고 내가 사서 입는다는데 할 말도 없다. 문제는 환경오염이다. 만들면서 오염되고 버리면서 오염된다. 옷은 아무리 천연소재일지라도 가공 과정에서 석유등 화학약품이 많이 들어간다. 게다가 생산시 전기 사용이나 염색 시 물 사용량도 엄청나다고 한다. 옷 쓰레기는 화학물 덩어리라 처치곤란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옷을 사고 또 사고, 버리고 또 버린다. 전 세계적인 fast fasion 흐름 때문이기도 하다. 빠른 유행 주기 때문에 올해 산 옷을 내년까지 입기만 해도 다행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체면을 중시하고 외모를 가꾸는 문화 때문에 옷을 많이 사는 경향이 있다. 동대문 도매 의류타운에 가면 화장실에서 새 옷을 갈아입고는 입던 옷을 버리고 가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 의류수거함에는 새 옷에 버금가는 옷들이 산더미처럼 버려지고 있다. 나만 해도 집 정리를 하면 옷 버리기가 일 순위다.


매번 버리는데도 옷장을 열면 여전히 옷들로 빽빽하다. 청소년 기후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새 옷을 사지 않겠다고 했다. 옷이 필요하면 다른 이들에게서 헌 옷을 구할 거라고.

비행기를 타지 않거나 비건을 실천한다거나 남다른 실천을 하는 그이지만 이 결심은 더 대단해 보인다. 올해 그가 성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창 외모에 신경 쓸 나이에 새 옷을 사지 않겠다니.

그의 선언에는 이유가 있다. 의류산업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0%를 차지한다고 한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해양의 미세 플라스틱 오염은 35% 이상이 의류산업에 의한 것이다. 우리가 멋을 내려고 옷들을 만들고 버리는 동안 지구는 병들고 있었다. 지구가 병드는 것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지금 우리는 그 벌로 지금 이렇게 병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마음들이.


옷 한 벌 해 입으면 머리맡에 개켜두고 밤잠을 설쳤던 어린 시절의 나. 또 산더미처럼 옷을 쌓아두고 처치곤란인 요즘의 나. 그중에서 어떤 내가 더 행복할까 고민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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