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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Nov 22. 2021

깍두기

좀 못 해도 괜찮던 시절

 요즘 사라진 것 중에 ‘깍두기’라는 게 있다. 어릴 적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를 할 때마다 나오던 말이다. 깍두기는 놀이에서 아이들이 맡는 포지션의 일종이다. 가령 고무줄놀이를 하는데 여러 명이 고무줄을 밟거나 회전하는 중 한 명이 실수로 못 하면 전체가 계속해서 지게 된다. 그러면 그 아이는 아무도 자기 팀에 끼워주려 하지 않게 된다. 이때 공정한 규칙이 탄생하게 된다. 즉 모든 팀에 속하는 팀원이 생긴다.    

  

그 팀원은 매 경기마다 참가한다. 실력이 형편없어서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적기 때문이다. 가끔 실수로 잘하기라도 하면 커다란 응원을 받는다. 그러면 으쓱해서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이 여세를 몰아 깍두기를 탈출하는 아이도 있다. 한번 칭찬의 맛을 보고 나면 중독이 되기 때문이다. 그 칭찬을 들으려고 놀이가 다 끝난 뒤에도 혼자 남아서 연구한다. ‘나는 왜 이게 안 되지? 다들 쉽게 넘던데.’ 하면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끝에 정식 선수로 입단하기도 한다. 이때 깍두기 시절이 생각나 울컥하기도 한다. ‘그동안 대놓고는 아니지만 다들 나를 무시했었지. 다 알아. 내가 너무 못한다고 욕한 아이도 있었어. 자기 팀이 진다면서. 아직까지도 기분이 나쁜걸. 두고 봐. 이제 내 덕분에 이기게 할 테니.’갑자기 과거 아픈 일들이 떠오른다.


 모두 내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신체 놀이를 못했다. 운동신경이 유난히 나빴는데 이는 타고난 게 분명하다. 지금까지도 그런 걸 보면. 운동신경을 타고 난 아이들은 모른다. 운동 신경 흙 수저 아이들의 일생을. 운동 얘기만 나오면 괜히 주눅이 들고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것을.


지금 돌이켜 보면 예전 아이들 놀이는 모두 다 운동의 형태였다. 공기놀이만 해도 손가락의 민첩성을 요하고, 숨바꼭질은 빨리 뛰어야 숨기 좋은 장소를 먼저 차지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걸음이 빨라야 술래 근처에 갈 수 있었다. 남자아이들이 하던 말 타기는 높이뛰기, 줄넘기 시합에선 폐활량과 발재간, 비석치기에선 거리 감각 등.      


극단적인 것은 고무줄놀이였다. 고무줄놀이는 올림픽 경기로 치면 높이뛰기 종목에 해당한다. 다리를 높이 들어 고무줄을 넘어야 했으니까. 나는 다리를 아무리 올려도 고무줄을 넘기가 힘들었다. 나보다 한 참 어린아이들이 넘는 높이도 힘들어서 쩔쩔매는 것이다. 그럼 아이들 놀림을 받게 되니 결국 고무줄놀이에 끼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여자아이들이 제일 많이 하는 게 고무줄놀이였다. 실력이 부족했던 나는 집에서 특별훈련을 했다. 집 마당에 있는 기둥에 고무줄을 묶어 놓고는 하루 종일 연습하는 것이다. 그렇게 옥내 훈련을 통해 고무줄놀이 실전에 참가하곤 했다.      


 실력이 없어도 깍두기로 끼워주면 무안하지 않았다. 또 실력이 출중한 아이가 너무 잘난 척하지 않는 깍두기라는 제도. 어린 시절 이후로 깍두기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먹는 깍두기나 조폭 세계 용어 외에는. 대신 살벌하게 모든 걸 실력대로 보여주는 기간들을 보내왔다. 내가 집안에다 고무줄을 묶어놓고 혼자 연습하던 기술이 있다. 고무줄을 오른발로 재빨리 휘감아서 밟는 기술이다.   

   

 비디오도 없던 시절이다. 대신 잘하는 아이들이 했던 기술을 억지로 떠올려가면서 연습했다. 그런데 막상 실전에 나가면 또 안 되는 것이다. 다른 동네에서 이사 온 아이가 이 기술을 처음 배우게 된 적이 있다. 그 아이는 운동신경이 좋았나 보다. 한 번 가르쳐 주니 금세 해내는 것이다. 어찌나 허무하던지.    

  

 깍두기는 못 하는 아이만 하는 게 아니었다. 너무 잘하는 아이도 깍두기였다.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너무 잘하는 아이, 축구선수로 치면 지단이나 메시쯤 될까. 그 선수가 등장하면 승부가 어느 정도 예측이 된다. 그런 인재는 동네마다, 경기종목마다 한두 명 밖에 나오지 않는다.(드물게 올 라운드 플레이어가 탄생하기도 한다.) 그런 아이가 있으면 모든 아이가 그 아이 편이 되겠다고 난리였다. 그럼 상대팀은 불을 보듯 필패다. 결과적으로 기대감이 없어서 놀이가 재미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열등생 말고 우등생에게도 전 경기 참여권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잘하는 아이는 모든 팀에서 뛸 수가 있다. 이렇게 하면 자기 실력을 맘껏 뽐내서 좋고, 상대 팀 사기를 일찌감치 꺾지 않아도 되니 좋다. 이처럼 ‘깍두기’에는 양 끄트머리를 배려한 고민이 보인다. 양쪽에 속하지 않는 가운데 아이들, 출중하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아이들은 위로 오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이는 어느 누구도 불안하거나 창피하거나, 잘난 척하지 않는 구조다.    

 

 어린 시절 놀이에서 늘 깍두기였던 나는 깍두기 제도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평온하고 인자하게 느껴졌다. 자라면서 다른 분야에선 나도 잘하는 것이 생겼다. 그때 깍두기 시절의 고뇌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동네 놀이에선 모든 걸 잘하는 아이가 있었지만, 현실에선 다르다. 잘하는 게 있고 못 하는 게 있다. 그 결과가 현실에 반영되니 삶의 질이 달라진다. 그 차이에 힘이 빠질 때가 많다. 각 분야마다 깍두기 자리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코로나는 빈부의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 얼마 전 또 일가족 극단적 선택 사건이 있었다. 가장이 삶을 포기하려고 했을 때 심정이 어떨까. 자기가 책임져야 할 가족을 차마 두고 갈 수 없는 마음이. 어린 시절 놀이처럼 했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경기가 참 안 풀리는구나. 그래. 그럼 잠시 깍두기 하지 뭐. 나중에 실력이 늘 때까지.’또 잘하는 깍두기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도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잖아. 지금은 내가 이쪽 깍두기 해야겠다. 저쪽 깍두기가 일어서도록.’ 중간 아이들은 이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놀이를 이어나갈 수가 있다.  

    

 어린 시절 깍두기는 놀이를 좀 못해도 괜찮았다. 놀이판에선 누구나 즐거운 게 중요했으니까. 진정한 놀이란 그런 거였다. 깍두기가 무안하지 않게 해주는 것, 또 혼자 잘해도 으쓱하지 않게 해주는 것. 삶도 놀이처럼 하면 안 될까. 가난한 이들이 최소한도의 삶을 보장받고, 부자는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삶. 그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서 더 나은 삶을 쟁취하는 삶. 어린 시절 놀이처럼 다 같이 재미있는 사회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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