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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Nov 23. 2021

강조주간 리본

초등생이 가슴에 새기던 국가시책들


어릴 적 있다가 없어진 것 중 ‘강조주간 리본’이라는 게 있다. 왼쪽 가슴에 종이나 비닐, 헝겊 등으로 만든 리본을 핀으로 다는 것이다. 이 리본에는 그 주간에 국가나 학교에서 필요한 메시지를 새겨 넣었다.


가장 많았던 것은 ‘멸공’, ‘반공’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들이었다. 다음으로 많은 것은‘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였다.      


이 리본을 안 달고 가면 학교에서 혼이 났다. 학교 정문 앞에서 종이로 급조해서 붙이기도 했다. 나중에는 문구점에서 파는 것도 나왔다. 리본이 주머니로 되어있어, 문구를 갈아 끼울 수가 있었다.      


인터넷도 없고 텔레비전 있는 집도 별로 없던 시절 일이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일을 서민들이 일일이 알 수가 없었으니. 조선시대처럼 마을마다 방을 붙일 수도 없고. 가장 저렴하고 손쉬운 방법으로 홍보한 것이다. 당시 정부에서 강조하던 것은 반공 교육, 불조심, 출산 억제 정책, 수돗물 아끼기, 전기 절약, 혼식 등이었다. 학교에선 실내 정숙을 특히 강조했는데, 한 반에 80명은 기본이던 시절이었으니 소음을 원천 봉쇄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어린 내게 이런 방식은 강력한 세뇌교육으로 남았다. 이 리본을 달고 그 이슈에 반대되는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애국', ' 애족'이 쓰여 있는 리본을 단 경우 국기만 보면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또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리본을 단 주간에는 부모님이 동생을 또 가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불조심 강조주간에는 어른스러운 행동을 했다. 특히 겨울엔 길거리에 나 뒹구는 연탄재에 조금이라도 불씨가 보이면 냉큼 다가갔다. 발로 밟아 연탄을 부수고 마지막 불씨까지 철저히 없앴다.      


이것 외에도 꼬마 애국자가 한 일은 많다. 우리 동네엔 삐라(불온 전단지) 많이 날아왔다. 그 내용은 아무리 봐도 어린아이가 이해하기 힘들었다. 주로 만화로 그려져 있었는데, 당시 우리나라 대통령과 우리나라 유명 여배우 그림이 나왔다. 전단은 종이 질이 나쁘고 인쇄 상태나 철자법, 말투가 달라 금방 알아챘다. 삐라를 주우면 파출소로 가져다주었다. 돈으로 보상해 준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우리 집 마당에 삐라가 한 웅 큼 뿌려졌다. 이제 우리 집은 부자가 되는 줄 알고 기뻐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파출소에 가져다주고 실망했다. 경찰 아저씨가 우리 머릴 쓰다듬고 끝냈기 때문이다. “ 다음에 보면 또 주워오너라.” 는 말과 함께.      


요즘은 유 튜브가 대세라 정보나 지식 등을 골라서 마음대로 취할 수가 있다. 국민을 일방적으로 세뇌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도 가짜 뉴스가 나오는 걸 보면 한심하다. 얼마든지 검증할 수 있는 시대인데 말이다.      


요즘 강조주간 리본을 단다면 무슨 문구가 들어갈까. ‘덮어놓고 낳다가는 거지꼴을 못 면한다. ’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감히 나라에서 개인의 자식 수까지 관여하다니.


농경문화에선 자식 수는 부의 원천이었다. 자식 수는 농사지을 인력 수니까. 농경문화는 아니지만 또 다른 이유로 인구수가 필요해졌다. 수요를 감당할 최소 인구수 말이다.

또 고령화가 심각해지는 추세에선 출산율을 올려서 전체 인구를 젊게 만들어야 한다. 또 세금을 낼 인구가 필요하다.


국민연금 고갈 문제도 떠오른다. 수령할 사람은 늘어 가는데 연금을 낼 인구수가 줄어드니. 교육비나 양육비 부담 때문에 자식을 덜 낳다 보니 인구가 점점 줄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정책이 나오고 있지만 별 효과가 없다.


특히 우리나라 출산율은 OECD 국가 중 최하다. 이제 이런 문구가 들어가야 할지 않을까. ‘낳기만 하세요. 기르는 건 나라가 합니다.’     


혼 분식 장려 문구도 마찬가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문구는 사생활 침해다. 다이어트 열풍이 불고 있는 지금, 저탄수화물 섭취가 권장된다. 혼식은 좋지만 분식은 장려할 만한 식생활은 아니다.


밀가루에 들어있는 글루텐 성분은 사람에 따라 뇌에 치명적이라던데. 그래서 글루텐 프리 제품이 인기다. 먹는 것 하나에 열량과 성분뿐 아니라 모양, 체질까지 다 고려한다.      


개인별 맞춤식을 하는 시대다. 하지만 예전엔 나라에서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간섭을 한 것이다. 심지어 학교에선 도시락 뚜껑을 열어서 검사까지 했다. 보리와 쌀의 비율을 보는 건데, 보리가 쌀의 비율에 못 미치면 손바닥을 맞았다.


쉬는 시간 도시락을 열어서 밑에 있는 보리를 꺼내어 위로 올리곤 했다. 다른 아이들의 도시락에서 보리를 가져다 위에 얹기도 했다. 이건 ‘혼 분식 장려’가 아니라 ‘혼 분식 강제’였던 셈이다.      


‘자나 깨나 불조심’은 괜한 불안감 조성이 눈에 거슬린다. 깨어 있을 때 조심하는 거야 상관없지만, 잘 때도 불조심을 하라니. 잠 하나도 마음대로 편하게 못 자나. 이제 불조심은 국가적으로 시스템화 되어 있다.


집집마다 천장에는 화재감지기가 설치되어 있고 간이용 소화기도 비치되어 있다. 건물마다 소화전이 눈에 띄게 되어 있고 스프링클러 등이 있다. 소방인원도 매해 증원하고 있으며, 신고만 하면 즉시 달려온다. 건물을 지을 때도 소방법규는 철저히 준수한다.       


이제 많은 일들을 나라에서 하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리본을 달아서 가슴에 새기던 일들이다. 요즘 강조주간 리본을 만든다면 어떤 문구가 들어가야 할까.


요즘은 전에 골칫거리였던 길에서 침을 뱉거나 쓰레기 투척하는 일도 사라지고 있다. 실내 흡연 금지? 대부분 잘 지켜지고 있다. 아니면 버스 정류장 줄 서기? 버스 오기 전부터 다들 알아서 한 줄을 만든다. 노약자에게 자리 양보하기? 노인이 아니면 그 자리에 앉는 사람이 없다.      


출산율 장려는 지극히 개인적이라 나라에서 말할 수도 없다. 이젠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추세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나라에 살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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