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발라주던 빨간약
호호 입김과 함께 엄마가 발라주던 그 약이 그립다
어린 시절 내 무릎은 늘 상처투성이였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운동신경이 나빠서 조금만 빨리 달려도 바닥에 고꾸라지곤 했다. 그 당시 길거리는 흙바닥이어서 가느다란 흠집과 큰 상처가 골고루 생겼다.
그런데 상처가 생기면 곧바로 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흙으로 범벅된 상처가 나고 조금 지나서야 피가 나온다. 그 잠깐의 시간은 내가 울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아주 어릴 때는 무조건 울어버렸지만 조금 크고 나니 우는 게 창피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울보였지만 주변에서 다 큰 애가 운다고 놀리면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피가 멍울멍울 나오고 나면 울음이 곧바로 터져 나왔다. 피가 난다는 건 내가 정말로 아픈 것이고 그 피는 내 울음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른들이 가져오는 것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상처보호 밴드 같은 것이 없었다. 그저 상처 위에 쓱쓱 바르는 빨간약이 있었을 뿐이다.
그 빨간약은 바르기 전에는 그저 시커먼 색으로 보였다. 그러나 살에다가 바르면 신기하게도 빨갛게 보이는 것이다. 강렬한 색깔 때문인지 그 빨간약은 언제 어디서나 통했다. 그 약을 바르면 마치 요술봉을 휘두르듯이 통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약을 발랐다고 해서 곧바로 통증이 사라진 게 아니다. 빨간약을 바르면 낫는다는 자기 최면 효과가 아니었을까?
빨간약만 바르는 것은 아니다. 그 약을 발라주면서 호호하고 불어주던 엄마의 입김이 있었다. 그 입김이 빨간약과 더 해져서 통증을 금세 멈춰 세웠다.
성인이 되고 난 후, 무릎 상처 따위와는 비길 수도 없는 많은 상처들을 겪는다. 사람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 위 내시경으로 확인한 위 내벽의 상흔들, 그리고 가끔은 내 몸 전부를 손상시키려고 도모하던 나쁜 세포들, 그 상처들을 대할 때마다 가끔은 어릴 때의 빨간약을 기억에서 소환하곤 한다.
어쩌면 그 빨간약에다가 호호 불어주던 엄마의 입김만 있으면 다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어릴 때 뛰다가 넘어져서 무르팍이 까지던 그때의 어리광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나 자신을 느낄 때가 있다. 여전히 두렵고 여전히 불안한 시간들을 견디고 있으니 말이다.
무릎이 까졌을 때 아이들을 관찰해 보면 재미있는 광경이 목격된다. 즉 넘어지자마자 꼭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울음을 터뜨리며 일어서지 못한다.
그러나 주위에 한 명도 없다고 판단되면 툭툭 먼지를 털고 일어서는 것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마치 아픈데도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일어서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가끔은 누가 내게 손을 내밀었으면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빨간약을 가져오는 것이다. 나에게 그 빨간약을 발라주면서 호호 입김까지 불어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안 아플 거야. 빨간약을 발랐잖니?”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하나도 안 아플 자신이 내게 있다.
그런데 참 난감하다. 주위의 어른들을 아무리 두리번거려 보아도, 그 누구도 빨간약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다. 대신 다들 자기 무릎에 통증을 가지고 있다.
중년이 되면 대부분 무릎 관절염을 달고 산다. 게다가 그 관절염은 완치가 어렵다. 어릴 적 무릎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요술처럼 사라졌는데 말이다. 어쨌든 그 빨간약이 효과가 있긴 했나 보다.
얼마 전 ‘라이프’라는 드라마가 종영되었다. 부조리한 삶을, 생명을 이어가는 버거움이 드러난 드라마였다. 그래도 결국 용기 있는 자들이 모순된 이 세상을 조금씩이나마 변화시켜 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거기서 ‘잘 지내요. 오늘도’라는 드라마 ost 곡이 흘러나왔다.
드라마 내용도 그렇지만 ‘잘 지내요, 오늘도’라는 말은 우리 어른들에게 발라주는 빨간약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 ‘호호~~’ 입김까지 불어주면 더 좋으련만 이걸로도 족하다. 그 말에는 ‘내일은 더 잘 지내야지.’ 하는 다짐과 오늘 설사 잘 못 지냈어도 어른이니까 참을 수 있다는, 자신을 대견스러워하는 마음이 있다.
그렇다. 어쨌거나 나이 상으론 어른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