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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r 02. 2021

'완벽남'에겐 비밀이 있었다.

그를 더욱더 완벽하게 만든 것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눈에 번쩍 띄는 미남 미녀들은 일반인중에서 찾기 힘들었다.

대체로 연예인들이 그런 감동을 준다. 전에 송중기 배우를 직접 본 적이 있는데 눈앞에 불이 번쩍하는 듯했다. 심봉사가 갑자기 눈을 뜨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일반인중에서는 딱 한 번 있었다.

상해에서 사업할 때 만난 대기업 남자 직원이다.

처음 업무 미팅을 위해 만났는데, 너무 잘생긴 남자가 나타난 것이다

순간 긴장하였다.

일단 키가 188 정도나 되었고, 과하지 않은 골격과 근육들이 어찌나 자기 자릴 잘 잡고 앉았던지. 피부도 무척 하얗고 좋은 데다 중저음의 듣기 좋은 음성을 가졌다. 그 뒤에 보니 매너도 무척 세련되고 일도 잘했다.


게다가 중국어도 한국인으로선 그 회사에서 제일 뛰어났다. 중국어를 잘한다고 해도, 대부분 말만 잘하는데 그는 중국어를 읽고 쓰는 것에도 막힘이 없었다. 나는 호기심이 일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저런 완벽한 사람이 되는지. 처음엔 '오우 멋진 직원!'에서 출발하여 '멋진 남자', '멋진 인간'에까지 이르렀다. 급기야는 저런 완벽한 인간이 이 지구 상에 출현한 것에 놀라웠다. 이건 뭐,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조합이어서.


그 엄마는 대체 태교를 어떻게 했길래, 저런 출중한 아들을 낳았단 말인가.

저렇듯 뽀얀 피부를 만들려면 무슨 음식을 먹어야 했나.

저런 늘씬한 모델급 몸을 만들려면 무슨 운동을 했나.

또 저런 뛰어난 두뇌를 만들려면 무슨 공부를 해야 했나.

저런 겸손한 태도를 만들려면 어떤 훈계를 하면서 키웠나.

또 그런 목소리를 만들려면 날계란에다 참기름을 쳐서 매일 하나씩 먹어야 했는지.

진심으로 알고 싶었다.


다들 제일 먼저 궁금해하는 사항은, 그가 결혼을 했는지 였다.

아깝게도 그는 이미 유부남이었다. 그것도 연상의 부인과 결혼을 했고, 아이는 셋이나 낳았다.

(그 부인은 전생에 지구뿐 아니라 은하계를 열 번쯤 구했나 보다.)


그는 결혼반지를 반드시 끼고 다녔다. 게다가 평소 그 철벽 방어자세란.

나에겐 적어도 양심이라는 게 있어서 그를 보려고 핑계 대고 그 회사에 자주 가지는 않았다. 대신 그 회사에 가서는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정도?(그게 더 이상했을지도.)

눈치 없는 여자들이 문제였다. 그와 함께 일을 하게 된 아가씨들이나, 특히 중국 사모님들은 그에게 대놓고 말을 걸며 관심을 드러냈다. 그의 태도에서는(아마도 젖병을 입에 물었을 때부터 단련된) 유서 깊은, 철벽방어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자신을 너무 자주 쳐다보고 과도하게 말을 걸면, 매몰차고 잔인하게 딱딱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비즈니스가 걸려있는데도.(그러니 여자들이 더 반하지.)


하루는 그 회사에서 내 특기를 발휘하게 되었다. 그것은 손금을 보는 것이었다. 전에 내가 손금을 봐준 다른 직원이 그에게 내가 용하다고 하니 그가 솔깃해서 자기도 봐달라고 했다.(결단코 내가 먼저 수를 쓴 게 아니다.)

마침 내가 공사를 무사히 끝내준 것에 대한 감사로 그가 밥을 사주겠다고 한다. 결국 다른 직원(그는 절대로 여자와 단 둘이서 밥을 먹거나 하지 않았다. 나름 자신의 신변보호 차원에서)과 셋이서 푸동에 있는 새로 생긴 초밥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그의 손금을 보게 되었는데...

그 직원과 대화를 나누던 중 그에게 반전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재벌 3세 같은 외모의 그가,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서 겨우 대학을 졸업했으며,

아버지가 사업으로 진 거액의 빚을 아직까지 갚고 있다는 것이다.

어쩐지 그는 수려한 외모에 비해 허름한 구두와 옷차림을 하고 다녔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가 일부러 빈티지 풍으로 입은 줄 알았다.)


그는 그동안 자기 자신이 무너지지 않으려고 절제된 생활을 해 온 것이다. 그의 냉정해 보이는 태도에는 에너지를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가정을 해 본다.

그가 지금과 반대로 좋은 환경에서 부유하게 살아왔다면 어땠을까.

아마 번쩍거리게 입고 다니고, 자신감이 넘칠 것이다.

무엇보다 외모 때문에라도 온갖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지금처럼 가정에 충실하지 못해 이혼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 지금처럼 죽도록 노력하면서 중국어를 마스터하고 직장생활을 했을까.

여늬 주재원들처럼 능력이 없어서 일찍 본국으로 쫓겨날 수도 있었다.


직장에서 능력 있고 평소 태도가 겸손하고 검소하고 가정에 충실한 남자.

이는 어쩌면 아빠가 안겨준 거액의 빚 덕분(?)이 아니었을까?

외모부터 머리, 인품까지 훌륭한 그에게 마치 화룡정점처럼 그를 붙잡아준 빚.

아이러니하게 재벌 2, 3세들의 마약 도박 사건들을 보면,

부모의 재력과 배경이 그들에겐 오히려 독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든다.

혹시 살면서 우리가 겨우 손에 쥐는 것들은,

'고통을 헤쳐온 에너지의 합'이 아닌가 하고.

어차피 우리 인생에 있어서 고통이 없을 리는 없다.


그나마,

내가 저지른 일도 아닌데 고통을 당하면 억울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어쩌랴. 딱 내게 주어진 고통인데...


대신 그 고통엔 좋은 게 하나 있다. 바로 '죄책감'이 없다는 것.

그리고 내 경험에 의하면,

기꺼이 그 고통을 감내할 경우 그 에너지는 이 아니라 이 된다는 것이다.

마치 완벽했던 그 남자 직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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