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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Apr 27. 2021

"글 쓸 일은 항상 있어"

우리가 글을 쓴다는 것은.

 하루 중 시간이 빌 때를 노려 글쓰기를 한다. 끊임없이 드는 생각과 싸워가면서.

'이런 창피한 얘기를 써도 될까? 너무 개인적인 것 아냐? 무슨 의미가 있기는 한가? 아냐. 아무리 시시한 이야기일지라도 누군가에겐 작은 공감이 되겠지.'

 

 쓰고 나면 고맙게도 누군가 댓글로 또는 '좋아요'로 공감을 표시해 주신다. 그 힘을 얻어 또 쓰곤 한다. 중독 중 가장 강한 게 있다면 글쓰기 중독이 아닐까. 글씨는 누구나 쓸 수 있다. 글도 누구나 쓸 수 있다. 다만 쓰는 것과 안 쓰는 것의 차이일 뿐.


 글을 쓰다 보면 시간이 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중 쓸모없는 날이 없으니. 또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모두 글의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공감이 되는 글을 쓰기 위한 여건이 무얼까. 다는 아니겠지만 대체로 '고난'이다. 꼭 개인적인 고난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사회 전반적인 고통에 대해 유난히 예민할 일이다.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에선 글을 쓸 게 없으니.


 가끔 쓸 내용이 없을 때가 있다. 그때도 생각 부스러기들이 머릿속을 시냇물처럼 흐른다. 그냥 한 바가지 떠내어 조물 거리면 된다. 형태 없고 쓸모없는 세포일 뿐이지만 끄집어내면 어떻게든 글이 된다.


 '대체 내가 지금 무슨 주장을 하려는 거지?' 할 때도 글자끼리 엉키고 얽혀 들며 무언가 만들어낸다. 세포를 그러모으면 제법 모양을 갖춘 생물체가 된다. 우연인지 계획인지는 모른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형태를 갖추게 된 '글 몸뚱어리들'일 뿐.

 

 마침내 육체를 입은 몸뚱어리들이 내게 말한다.

"그러게 왜 좀 더 일찍 쓰지 그랬어? 써 놓고 보니 시원하잖아. 창피한 이야기라고? 뭐 어때? 다들 마찬가지야.  털어놓지 않으면 어쩌게? 끙끙 앓다가 곪아 터진다고."


 마치 곪은 상처를 바늘로 터뜨리는 같다. 그대로 놔두면 몸 전체가 썩을 판이니. 곪은 상처를 폭발(처음엔 되는대로 줄줄 풀어쓴다.)시키고, 소독(뺄 건 빼고, 읽기 좋게 다듬는다.)하고 나면 상처가 씻은 듯이 낫는다.


 글을 쓴다는 건 하나의 치유 의식이 아닐까. 멋진 작가들처럼 작품을 쓰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가슴속의 응어리들을 줄줄 뿜어내는 것, 글자 하나하나가  아바타가 되어 통통 튀어 다니게 하는 것이다. 그 들은 내 고통을 조금씩 묻혀서 나를 아주 떠나버린다.


 단 글을 공개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혼자 보려고 쓰는 글은 계속해서 끌어안아야 하기 때문. 그 억 그 억 토해내는 분출의 시원함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남들이 공감해주면 내 글이 여행을 떠난다. 실제로 내가 모르는  곳에 사뿐히 날아 앉아 누군가를 위로하기도 한다.(내가 브런치에 올린 글이 어느 라디오 방송 게시판에 올려져 있는 것도 보았고, 블로그나 카페 같은 곳에 인용된 것도 보았다.)


이때 글을 쓰면서 가장 큰 위로를 받는다.

내 글이 남에게 도움이 되었구나.

내 고통이 쓸모가 있구나.

나도 보통의 인간이구나.

나만 그런 거 아니구나.

남들도 다 나같이 느끼고 고통받고 예민하구나.

그러니 나는 지극히 정상이야.

다만 내가 글로 끄집어낸 차이일 뿐이지. 하면서.


 속으로 느끼는 걸 구체적으로 표현해 낸다는 것은 귀한 일이다. 그건 누군가가 '혹시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신 거 아니에요?' 하고 질문하게 하는 일이다. 그런 질문을 받을 만큼 자유자재로 내 머릿속을 펼쳐 보일 수 있다면 좋겠다. 머릿속에 돌돌 말려져 있는 두루마리를 주르르 펼쳐 보이는 일 말이다. 넓은 곳에 펼쳐 놓아야만 보이는 문양들이 그 속에 숨어 있다. 그 문양이 아름다울 수도, 신산할 수도 있다.


그래도 펼치면 더 좋다. 아름다움은 더 아름답고, 신산함 위에는 품위를 얹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어제 윤여정 씨의 오스카 수상을 보면서 그녀의 유머와 품위에는 신산함이 깔려 있다고 느꼈다. 열정적인 연기로 그 신산함을 분출한 내공이 대단해 보인다.) 나의 힘듦은 내게 가장 경제적인 담금질이었다는 걸 느낀다.


 특히 괴로울 때 쓰는 글은 소각장으로 보내는 고효율 연료다. 그 쓰레기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어떤 재료였는지 가격이 얼마였는지 알 수는 없다. 어차피 태워버리니 알 필요도 없다. 아무리  비싼 쓰레기라고 해 봐야 태우면 어차피 똑같은 재로 변하니. 쓰레기는 태움에 있어서 차별이 없는 것이다. 자기 몸을 불살라서 누군가에는 따뜻하게 몸을 덥히고 밥을 지을 수 있게 해 주니까. 내 몸에서 나간 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내 삶에 쓰레기가 가득 차는 때가 있다. 더 이상 들어찰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그땐 글을 다. 글을 쓰고 다듬고 지그시 그 글을 들여다보는 일, 그건 내 안의 쓰레기를 훌륭하게 재 활용하거나 태워서 연료로 쓰는 일이다. 보잘것없어도 괜찮다. 글을 쓴다는 건, 무언가 끄적거린다는 건, 이렇게나 쓸모 있는 일이다. 누구보다 나 자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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