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윤숙 Aug 02. 2021

죽이려야 죽일 수가 없는.

이런 식물에 관심이 간다.

요즘 식물에 관심이 많다. 나이 들면서 바뀐 것 중 하나다. 그 전엔 아니었다. 아파트에서 식물을 기른다 하면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촌스런 도자기 화분에 어슴프레 그려진 동양화, 그 도자기에 담긴 진초록 식물들이다. 대개 선인장이나 난 종류들인데 딱히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눈에 들어온 식물들이 있다. 부채처럼 시원하게 펼쳐진 잎새나 야자나무 같은 비주얼, 또 잎이 동글동글하거나 개성 있게 찢어진 식물들이다.


하지만 관상용으로 즐기는 것과 들여서 기르는 건 다르다. 오래전 내손에서 죽어나간 식물들이 떠 올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 돈만 버리겠지. 집만 어질러질 거야. 죽은 화분 치우는 것도 일이니 말이야.'


그런데 유튜브를 보며 만족하기엔 내 욕망이 너무 컸다.  집에 들여야 했다. 반려식물이라는 지위까지 얻은 그들을 과자 사듯 마트에서 살 일은 아니었다. 대신  당근 마켓에 올라온 식물들을 입양하게 되었다. '그동안 정성껏 키우다 베란다 없는 집으로 이사 가게 되어 보냅니다. 저 대신 잘 키워주세요. 순둥이들이라 물만 가끔 줘도 잘 자라요.'등등의. 의미를 찾기 위해 친구에게 내 생일선물로 강요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생긴 화분이 수십 개였다. 얼마 후 운명을 다하는 아이들이 속출했지만.


서바이벌 게임인. 예쁜 꽃이나 특이한 모양의 이파리 들은 한 달도 못 넘기고 작고했다. 눈부시게 하얗던 수국이나 하늘하늘한 도라지꽃, 이국적 외모의 율마, 좋은 향이 나는 애플민트 등 등. 미국에 사는 동생에게 말했더니 스킨답서스를 적극 추천했다. 자기가 몇 개의 식물을 기르는데 특히 스킨답서스가 좋다고. 주방에 두면 가스를 흡수해 주니 건강에 좋고, 무엇보다 '죽이려야 죽일 수가 없는 아이들'이라고.


그 '죽이려야 죽일 수 없음'이 끌렸다. 누구보다도 따뜻한 가슴을 가졌지만, 안전하게 돌보는 데는 서툰 손을 가진 나라서.  


이 식물은 생명력이 강하다. 잎을 따면 그 자리에 금세 새순이 나온다. 감동하는 부분이 있다. '꾸준한 싱싱함'이다. 왜 국민 화초라고 하는지 알겠다.


예쁘고 희귀하다는 이유로 값이 비싼 식물들은 기르기가 까다로웠다. 딱 일주일만 자신을 보여줬다. 스킨답서스는 화려하지 향도 없다. 대신 나날이 풍성해진다.


이 평범한 외모가 지닌 강한 생명력은 내게 울림을 준다. 반짝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 반짝임은 주로 외면이었다. 반짝임보다 중요한 게 있다. 지치지 않는 생명력이다. 싱그러움을 유지하면서.


오해받고 관심에서 비켜나더라도 말이다. 결코 노여워하지 않고 꾸준히 자기 자릴 지키는 것이다.

상처 입고 팔다리를 잘리더라도 그 자리에 금세 새순을 내고 다시금 튼튼한 잎새를 올리는 것이다.

주인이 물 주는 걸 잊어 수분을 간직하고 있어서 메마르지 않는 것이다.

다른 화분들처럼 가구 위나 햇볕 가득한 베란다에 두지 않느냐며 투덜대지 않고 말이다.


이 식물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우린 꼭 눈부신 존재가 아니라도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건강하게 몸 관리하면서 나에게 맞는 일을 오래도록 해내면 된다. 뭐든 시간이 힘이 되니까. 상처를 받더라도 노여워하지 말고, 툭툭 털고 일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싱그럽게 웃는 것이다. 그러면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어차피 죽이려야 죽일 수가 없을 테지만.

작가의 이전글 "글 쓸 일은 항상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