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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Aug 05. 2021

꼰대가 우울증이라니.

인자한 노년을 기대하면서

평소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내 나이 또래 남자가 운영하는 건데 콘텐츠가 좋고 무엇보다 성격이 좋아 보였다. 중년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솔직하고 밝고 엉뚱해서. 그랬는데... 얼마 전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가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는 말이었다. 방송에서 보여주는 표정이나 태도는 결코 우울해 보이지 않았다. 약을 먹고 많이 좋아져서 유튜브를 시작한 거란다.


이어지는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자신은 치료받기 전엔 어딜 가든 꼰대 짓을 했다고 한다. 맘에 안 드는 일이 너무 많아서 참견하고 반박하고 언성을 높이고.(딱 꼰대 아저씨들이 하는 행동이다.) 우울증을 인지한 건 아내 때문이라고 한다. 아내가 참다못해 우울증 치료를 적극 권해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고. 처음엔 선입견이 있었지만 받고 나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신경정신과 하면 길거리에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행인들이나 머리에 꽃을 꽂은 여자가 떠 오른다. 하지만 말짱하게 사회생활하는 사람 중에도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많다.


그가 하는 말이 요즘은 약이 잘 나와서 몸에 부작용도 없고 효과도 좋다고 한다. 진작에 치료받을걸 하고 후회한다고.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주변에도 권유하라고. 혹시 꼰대 짓을 하거나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은 우울증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인은 우울증인지 모르는 게 문제다.


몇 년 전 우리나라 초대박 베스트셀러 책 중에 우울증 관련 책이 많았다. 젊은이들이 자신이 걸린 우울증과 그 치료과정을 솔직하게 풀어놓은 것이다. 그런 책을 젊은이들이 많이 사 본다는 건 그만큼 우울한 젊은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취업이나 결혼 등이 힘들어서 다들 우울할 수 있다. 그러면 중년이나 노년은? 아마 우울한 이유를 찾으라면 몇 배는 더 많을 것이다. 자녀가 결혼이나 취직 때문에 힘들어한다면 그 뒤엔 그 보다 더 우울해하는 부모님이 계신다. 나만해도 자녀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내가 더 힘들어한다. 내가 뒷바라지를 잘 못해줘서 그런가 해서 죄책감마저 느끼니.


특히 은퇴 이후 가장들이 느끼는 고독함이나 허무함은 크다.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 개인적인 교류가 활발하지 않은지라. 일선에서 물러나자 주변에 사람도 없고 말주변도 없다. 우울증이 생기기 딱 좋다. 그 우울증을 부인이나 자녀, 아무 관련도 없는 서비스 직 종사자들에게 푼다.


얼마 전 자주 가는 병원 로비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다가가서 보니 어떤 할아버지 환자가 병원 내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다가 불평하는 소리였다. 소리가 크고 상스러운 말을 해서 나중에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원이 하는 말이 커피를 주문하고 나자마자 커피 쿠폰을 내밀며 도장을 찍어 달라고 재촉했단다. 그래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커피가루를 넣고 나서 찍어주었단다. 그때 자기가 인상을 썼다면서 소리친 거란다. 참 별것도 아닌 일로 화를 내신 거다.


내가 너무 억울했겠다고 하니 할아버지들이 그러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 이제 그러려니 한단다. 젊은 사람들은 그런 경우가 없다고. 참 씁쓸하다. 나이가 들면 더 점잖고 인자해져야 하는데.

생각해보니 병원이나 관공서 같은 데 가서 중년의 아저씨들이나 할아버지들이 큰소리치고 화내는 걸 본적이 많다. 얼굴을 보면 화가 잔뜩 난 표정들이다.

 

그들이 젊은이들에게 비해 화가 날 일이 많은 건 당연하긴 하다.

-형제들 모임이나 친지들 모임에서 가난하고 무능력하다고 무시를 당했거나.

-자식이나 며느리가 자신을 홀대한다고 느꼈거나.

-자기는 몸이 아픈데 아픈 곳을 정확하게 치료해주지 않고 자꾸 병원비만 축난다고 느낄 때

-정치인들이 하는 꼬락서니가 도저히 맘에 안 들 때

-은행 금리로 먹고살려고 했는데 자꾸만 금리가 내려가서 생활비가 감당 안되거나

-왕년에 잘 나가던 자신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젊은 시절 몸 바쳐 일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남 좋은 일만 한 것만 같거나.

등등의 이유로 늘 화가 나 있고 맘에 드는 게 없는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일생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는데. 게다가 분단국가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분들이니. 그 과정에서 억울한 일이 없을 수가. 


차범근 해설위원이 오래전 썼던 칼럼이 기억난다. 자신의 아들인 차범근 선수가 축구를 놀이로 배웠다는 말을 하면서 자기가 목숨 걸고 축구를 한 것과 비교된다고. 자기는 공을 차면서 비장한 마음이었고 안되면 큰일 났었단다. 하지만 자기 아들은 자기 세대가 만들어준 토대 위에서 출발하니 좀 더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그런 시대를 만들어주어서 뿌듯하다고.


꼰대 아저씨들이나 라테 이즈 호스 하면서 비꼴 때 나는 그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우리 세대나 그 윗세대들이 겪어온 일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우리 세대보다 더 우울해서 우울증 치료를 많이 받는 걸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요즘 젊은이들이 우리 세대에 비해 정보에 밝고 자신을 제대로 위할 줄 알아 대처를 잘하는 것일 뿐.


나이 든 세대의 화병을 사회적으로 치료할 방법은 없을까? 우선 정신과 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각자 살아오면서 자기 자리에서 많은 공을 쌓은 만큼 그동안 쌓인 울분을 적절히 해결 받을 권리가 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풀 수만 있다면 인자한 노인들, 중후한 중년들이 더 많아지리라 본다.


그게 자연의 이치에도 맞는 노화 단계가 아닐까. 우리가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 하면 떠올리던 인자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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