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윤숙 Aug 12. 2021

존중은 처음이라.

난생처음 내손으로 여름 보약을 지어먹었다.

 몇 년 전 일이다. 같은 직장에서 20대 초반의 여직원이 남자 상사를 성희롱으로 고소한 일이 있었다. 그때 그 상사에게 피해를 입은 여직원은 한둘이 아니었다. 다들 나를 내세워서 일을 해결하려고 했는데, 갈등이 생겼다. 그 상사의 아들과 부인을 알고 있어서다. 그를 고소하면 가정이 파탄 날게 뻔한데, 하는 생각에 망설이게 되었다. 내 마음속 딴지도 문제였다. 젊은 시절의 나는 그보다 더 한 일을 겪어도 고소하지 못했던 생각이 난 것이다.


 그땐 억울했지만 참아야 했다. 직장 상사나 전철 안의 가해자들을. 여러모로 사회안전망이 취약했다. 시대의 불합리함을 겪은 우리들이다. 시대가 발전한 지금, 우린 비겁하단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것이다.


 2, 30대 여직원들의 경우 음담패설을 하면 금세 눈살을 찌푸린다. 우리 시절엔 여자나 남자나 농담했다 하면 대개 야한 게 많았다. 우리 시대 아줌마들이 야한 농담을 잘하는 이유는 뭘까? 그 당시 남자들이 대학이나 직장에서 입에 달고 산 것이 음담패설이다. 줄여서 edps라고 하기도. 당시엔 여자들이 그런 농담에 발끈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사회 분위기가 그런 부분에 허용적이었기 때문이다.


 무작위로 당하는 성적접촉은 어떤가. 우리 땐 폭발 직전의 만원 전철이나 만원 버스가 일상이었다. 여자들에겐 가방 외에 파일박스 등 가리개가 따로 필요했다. 무수한 치한들의 부적절한 손놀림을 몸 앞뒤로 막아내기 위해서였다. 요즘은 핸드폰으로 증거 자료를 남기고 해서 신고도 잘한다. 주변에서 막아주기도 한다. 그땐 달랐다. 워낙 빈번한 일이라 자기 몸은 스스로 지켜야 했다.


 이런 일을 겪은 우리 나이 때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가 많다. 무엇보다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 간극을 메울 수 있으려면 공감능력을 키워야 된다. 돌아서서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 같으면 기분이 나빴으려나?' 하고. 그런데 참 서글픈 것이, 그게 힘들다는 것이다. 하도 오랜 시간 그러려니 하고 살아와서인지. 그런 무감각함이 실수로 이어진다.


 결국 젊은이들의 감성을 배우려고 유튜브를 본다거나 아들딸과 대화를 많이 한다. 사회생활을 하며 실수하지 않으려고. 키워드는 '존중'이다. 그들은 존중받아왔고 우린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존중할 줄을 모른다. 아니라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여자들만 그런 거 아니냐고. 나이 든 남자들은 요즘 군대문화를 들으며 놀란다. 군대에서 핸드폰을 쓰는 거며 맛있는 식단 하며. 또 직장에서 상사가 퇴근하기 전 먼저 퇴근하는 건 힘든 시절이었다. 그러니 "우리 땐.." 하며 꼰대 소릴 듣기도 한다.


 개인이 존중받는 시대가 온 것이 누구 덕분일까. 선배들부터 부단히 투쟁해온 결과물이 아닐까. 전엔 국가의 사상이나 집단의 이익때문에 개인이 희생당하는 것이 일상사였다. 그에 대항하여 자신을 희생한 분들의 덕분이다. 그 과실을 지금 세대가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를 어중간하게 살아온 우리들도 이제 존중을 누려야 한다. 아직은 존중이 낯설고 버겁긴 하지만.






 유난히 더운 이번 여름. 이럴 땐 특히 여자들 몸이 축난다. 전엔 남편이 보약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기다리다가 목이 빠졌다. 그러다가 원망이 생겼는데...


 이제 눈치나 원망 같은 거 집어치우고 나를 먼저 챙기련다. 어제 나는 내손으로 보약을 지어다 먹었다. 기분 탓인지 아침에 일어나는 게 수월해졌다. 누구보다 소중한 나의 몸이다. 이제 남편이나 아이들 말고 나를 먼저 존중해야겠다. 그래야 남을 존중하는 방법도 쉽게 알아챌 테니.





 

작가의 이전글 꼰대가 우울증이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