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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Apr 13. 2021

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꽃이 좋아지면 늙은 거라는데.

 신기한 영상을 보았다. 신발을 보고 무슨 색인지 맞추는 것이었다. 난 한눈에 민트색이라고 했다. 그러자 친구가 하는 말이 그건 내가 남성 호르몬이 많아서 그렇단다. 자기 남편은 핑크라고 했는데 이는 여성 호르몬이 많아서라고. 나는 여자고 친구 남편은 남잔데 결과가 반대로 나온 이유는 뭘까? 친구가 하는 말이 자기 남편이 요즘 잔소리도 많아지고 꼼꼼해지는 등 여성스러워진다나. 그러고 보니 우리 남편도 요즘 성격이 변했다. 그렇담 거꾸로 내가 지금 남성스러워지고 있는 걸까?


사춘기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과도기이듯 갱년기는 노년으로 가는 과정인 듯하다. 그 과정에서 남성은 여성화되고 여성은 남성화된다. 서로 중화 과정을 거쳐 성별 특징이 사라지는 듯. 성별 특징이 사라진다는 것이 의미하는 건 무얼까? 무엇보다도 더 이상 이성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꾸밈비 용도 덜 들고 에너지도 덜 든다. 체력도 떨어지니 반가운 일이다. 거기서 남는 에너지는 건강을 돌보거나 주변을 돌보라는 뜻 아닐까.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다. 과도기 증상이라 스스로 위안을 해 보지만, 전보다 짜증이 많아지고 더러 폭발해 버린다. 전엔 참던 것들이다. 나이가 많아지니 자신감이 생겨서일까 아니면 감정 조절을 못 해서일까? 또 조금만 방심하면 살이 찐다. 


요즘 겪는 변화를 보면서 말장난 좀 해 봤다.

1. 감성적이 아니라 다분히 감정적으로 변한다.(걸핏하면 욱하게 된다.) 

2. 센치한 게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센티가 늘어난다.(허리둘레 등) 

3. 충동적인 것을 넘어 충돌적이다.(뭔가 불쾌감이 느껴지면 들이받는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 깐깐해지는 나 자신에 대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꼰대의 시작이 아닐까 해서 걱정스럽다. 전보다 인간관계를 좁히게 되고 마음과 맞는 몇 사람만 만나게 된다. 번잡한 것보다 단순하고 편안한 것을 좋아하게 된다. 


반대로 너무 좋아해서 너그럽다 못해 무너지는 부분이 있다. 자연이다. 도시 출생인 나는 자연을 접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이 꿈틀댄다. 길을 걷다가 보는 이름 모를 꽃이나 보도블록 틈에 낀 잡풀마저 애틋하다. 가슴 깊이 흙을 그리워한다. 과장되게 말하면 내 몸이 흙에서 왔다는 걸 실감한다고나 할까? 언젠간 내가 흙으로 돌아갈 것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런 변화가 놀랍다. 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 나서다. 자연을 좋아하고, 특히 꽃을 좋아하면 늙었다는 증거라고. 할머니들 옷에는 유난히 꽃그림이 많다. 작년 이맘때쯤 친구가 꽃이 바라다보이는 카페에 데려갔다. 그 카페에서 친구가 꽃을 바라보면서 연신 감탄을 하는 것이다. 요즘 내가 그렇다. 꽃만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아직 전체 꽃무늬 옷까지는 안 갔지만 꽃그림이 있는 티셔츠는 사 입어 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게 사람이지만, 내가 노년의 '국 룰'까지 따라가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한편으론 내가 정상적으로 나이 들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기도. 내가 너무 특이한 방식으로 나이를 먹으면 그것 때문에 골치 아파할 사람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나빌레라'가 그렇다. 70세 넘어 발레라니. 젊은 시절 꿈을 버리지 않고 이루려는 열정이 놀랍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다. 나이에 맞게 늙어가길 바라는 거다. 


꽃을 보면서 감동하는 심리는 무얼까? 한창 젊고 예뻤던 때를 그리워하는 걸까? 끝없이 피워 올리는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일까? 잘 모르겠다. 그저 꽃잎 한 장 한 장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비싼 꽃이든 길가 꽃이든 다 같이 소중하고 대견하다. 연약하면서도 질긴, 꽃의 성정에 동질감을 느끼는 거 같다. 


어느 순간부터 해가 바뀔 때마다 체력이 약해지는 걸 느낀다. 그에 대한 반동이 꽃을 향해 나타나는 건 아닐까 한다. 즉 죽음보다는 생명 쪽에 바짝 붙으려는 집착이 투사되는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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