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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Apr 14. 2021

혼내지 않는 사회

학폭이 뒤늦게 드러나기 전 해야 했던 일들

 수업 중 여학생이 한 남학생을 괴롭히는 모습이 보였다. 몇 번이나 지적을 했는데도 내 눈을 피해 남학생 팔을 쿡쿡 찌르면서 괴롭혔다. 당하는 남학생은 평소 친구도 별로 없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괴롭히는 학생도 유명한 아이였다. 소위 집안은 좋은데 버릇이 없는 아이로 기가 약한 아이들을 취미로 괴롭혔다.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저항할 의지도 없는 듯했다.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화가 나서 수업이 끝나고는 엄하게 혼을 냈다. 다른 반 학생들이 이미 수업하러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그런데 혼나는 여학생 태도는, ‘기껏해야 몇 마디 가볍게 혼내겠지?’ 하는 표정이었다.   

   

 언젠가부터 기가 센 학생들 사이에선 교사를 고소하는 것에 대해 쉽게 말한다. 심한 경우 교사가 화가 날 일을 일부러 만든다. 그래 봐야 어차피 자길 때릴 수도 없고, 욕도 할 수 없으니. 여차하면 녹음하거나 영상 촬영해서 고소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다. 그런 속셈이 이 학생에게서 보이자 더 화가 났다. 그래서 자기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계속 혼을 냈다. 혼내고 나서 보낼 때 달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자 그 여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저 한 번만 안아주시면 안 돼요?”   

  

 순간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그렇게 심하게 혼나고 나서 안아달라니. 감동하여 두 팔을 활짝 펴서 진심을 다해 안아주었다. 그러자 이 여학생,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많은 아이들이 박수를 쳐주었다.(이 글을 교육 관계자들이 안 보길 바란다.)


 늘 느끼는 거지만 나는 교육자로서 결격이다. 수업 시작종이 쳤는데 안 보내주어서 학생의 수업권을 빼앗았고, 담임교사도 아닌데 너무 깊이 관여해서 혼을 냈다. 무엇보다 한창 민감한 시기의 아이를 다른 학생들이 보는데서 혼을 냈다. 이것만으로도 부모님이 항의할 수 있었다. 내심 걱정은 하고 있었다.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지나갔지만.    

  

 그 뒤로 그 여학생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소위 일 짱(가장 기가 센 아이)인 아이가 순한 양처럼 변한 것이다. 교사들이 모두 궁금해했다.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로선 흐뭇했다. 며칠 뒤 그 여학생이 나를 찾아왔다. 그동안 자기 잘못을 깊이 반성했다고 한다. 단 한번 혼이 나고 나서 달라지다니. 그럼 그 전엔 왜 그랬을까?    

 

 그 여학생이 말했다. “그 전 선생님들은 항상 혼을 조금 내다가 말았거든요. 제가 반항하거나 하면 그냥 보내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뒤로 제가 점점 버릇이 없어졌어요. 저희 부모님도 포기하고 별로 혼내지 않거든요.” 뒤이어 충격적인 말을 했다. 요즘 교사들은 딱 문제가 없을 정도로만 혼을 낸다고. 그래서 자기는 내가 소위 (교사) 직을 걸고 자길 엄하게 혼낸 것에 대해 감동한 거라나? 여러 가지로 씁쓸했다.      


 아무리 잘못을 해도 심하게 혼내기 힘든 시대다. 요즘은 군대에서도 마음대로 혼을 내지 못한다. 심지어 상사가 부하를 폭행하면 위계에 의한 불법이고, 부하가 상사에게 맞대응으로 폭행하는 건 불법이 아니라고 한다. 개인주의와 자존감을 중시하는 시대에 자연스러운 변화이긴 하다. 하지만 ‘혼나는 것’과 ‘상처 받는 것’은 다르다.   

   

 최근 스포츠 스타나 인기 연예인들의 학교 폭력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어린 시절 일을 가지고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한 사람은 다르다. 인격이 형성되던 민감한 시기에, 친구에게 당한 일은 평생 따라다닐 수 있다.      


 학교 폭력의 바탕에는 이기적인 논리가 숨어있다. ‘과거는 그저 과거일 뿐’이라는. ‘학창 시절 아무리 나쁜 짓을 했어도 어른이 되어 제대로 살면 되지. 어릴 땐 뭘 몰라서 그랬으니까.’ 하는 것이다. 물론 피해자도 잊고 살 수는 있다. 단 눈에 안 보이는 한에서.


 가해자가 성인이 되어 버젓이 방송에 얼굴을 드러낼 때 피해자는 어떨까? 끔찍한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날 것이다. 가장 높이 날아오를 때 발목을 잡는 일은 잔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혹독함이야말로 학교 폭력 문제를 뿌리 뽑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나중에 커서 큰일이 생길 수가 있으니.   

   

무엇보다 어른들이 제 할 일을 해야 한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따끔하게 혼을 내는 것이다. 몸을 사리거나 회피하지 말고,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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