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불안을 써먹기

by 허윤숙

나만큼 예민한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 예민함은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먼 조상의 유전인자 중 아주 예민한 유전인자가 나에게 왔나. 다들 고깃덩이를 씹을 때 또 언제 굶을지도 모르는데 하면서 소화불량에 걸린 조상의.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불안을 삼켜보려 하지만 결국 또 게워낸다. 위산이 나오기도 전에 치밀려오는 그 덩어리들. 꾸역꾸역 내려보내지만 금세 치밀어 오른다.


한 때는 배수구공포증이 있었다.

샤워를 하면서, 또 세수를 하면서 늘 하수구를 쳐다본다. '막히기 전에 제거해야만 하는데.'

배수구가 막힐까 봐서다.

매사에 늘 불안하다.

하는 일마다 잘 안될 것 같다.

친구랑 만나 즐겁게 대화하곤 돌아서서 또 불안하다.

내가 실수한 말은 없나?

아까 친구가 한 말에 내가 웃은 걸 비웃은 걸로 아는 건 아닐까? 하고.

이 불안의 정체는 대체 무얼까.

열심히 하고도 뭔가 덜 한 것 같아 찜찜한 이 느낌은.

그래서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벅차게 만들고야 마는 이 힘듦의 정체는.

그러다 우연히 읽게 된 책이다. '불안'이라는 키워드로 검색되어 눈에 띄게 된 이 책

제목부터가 불안하다. 알랭드 보통의 <불안>

현대인의 불안은 어디서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부수어 나가야 할지 되짚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불안해지지 않으려고 불안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시체를 해부해 봐야 병을 고칠 방법을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 첫 번째로 눈에 띈 문장이다.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물질에 대한 갈망과 허기짐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거창하다고 여겼던 불안이 자기 계발서 후유증은 아닐지 의심한 대목이다. 신년에 산 다이어리는 항상 앞쪽만 손때가 묻어있다.

루소는 이에 교육철학자다운 해설을 내놓는다.

'루소에 따르면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소유한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 '


그래. 나정도만 해도 그렇다. 적어도 많이 먹어서 문제지 먹을 게 없어서 문제는 아니지.


별로였던 사람이 근사해지는 것을 볼 때 느끼는 절망감도 우릴 흔든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이야말로 불안과 윤회의 원천이다.'


물질, 외모뿐만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 나에 대한 소문, 나를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느끼는 효능감, 그렇다. 효능감. 내가 적어도 남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삶이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 그게 필요했다. 내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말이다.


이에 대한 멋진 해답은 러스킨에게서 나온다.

'러스킨은 말한다. "삶, 즉 사랑의 힘, 기쁨의 힘, 감탄의 힘을 모두 포함하는 삶 외에 다른 부는 없다. 고귀하고 행복한 인간을 가장 많이 길러내는 나라가 가장 부유하다. 자신의 삶의 기능들을 최대한 완벽하게 다듬어 자신의 삶에, 나아가 자신의 소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영향력을 가장 광범위하게 발휘하는 그런 사람이 가장 부유하다. 보통 부유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실 그들의 금고 자물쇠만큼이나 부유하지 못하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부유할 수가 없다.'



한 마디로 돈이 다가 아니라는 말이다. 먹고 마시는 것이 어느 정도 해결되면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예술이 필요해지는 지점이다.


'위대한 예술은 구름 잡는 이야기이기는커녕, 삶의 가장 깊은 긴장과 불안에 해법을 제공하는 매체다. -중략- 아무리 비실용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예술은 무엇보다도 존재의 부족한 부분을 해석하고 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보라. 아널드는 제안한다. 거기에서 (직접적이든 아니든) "인간의 잘못을 없애고, 인간의 혼돈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은 "세상을 자신이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낫고 더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갈망"에 사로잡혀 있다.

예술은 당혹감, 비애, 쾌감을 통해 '자아 성찰'을 준다. 좋은 책을 읽은 후, 좋은 음악을 듣고 난 후, 이처럼 '부유'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 과정(각성의 회로)은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불안은 기본값인가. 난 스티븐 핑커의 <후회의 재발견>에서도 위안을 얻었다. 후회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기질상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내 불안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불안한 것 때문에 불안'해하지는 말아야겠다. 대신 '불안'을 잘 '써'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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