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지은 나

하루하루 아슬아슬하게 말로 이어지는 날들.

by 허윤숙

'내면 소통'이라는 책을 읽고 놀랐다. 사람이 언어를 사용하기 전, 유인원시절엔 생각에도 한계가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조현병 환자처럼 다른 자아가 귀에 속삭이는 현상 등이 원시인들에겐 흔했다는 내용도 충격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좌뇌와 우뇌가 분화된 결과, 우린 한 번에 한 가지 내면의 목소릴 듣는다.


인디언사회에서 오랫동안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도 맥락이 비슷하다. 할아버지들이 손자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해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우리 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늘 싸운다. 나쁜 늑대와 착한 늑대. 그런데 우리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결국 승리한다-는 말이다.

이 이야기에도 우리 뇌 속에서 일어나던 이중적인 소리(그게 선과 악일 수도 있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우우" 하는 소리로 배고픔 같은 원초적인 감정만 표현할 수 있었던 시대. 그땐 동물처럼 지능은 있되 감정은 단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사람이게 하는 뇌의 활동, 즉 감정이나 이를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또한 사람을 고민하게 하는 요소다.


말이 우리를 사람이게 한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도 자신의 의사를 수화로 표현한다.)


결과적으로 말은 곧 그 사람이다.

즉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둘을 대입시켜 보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조리 있게 말하는 사람은 생각도 합리적이다.

두서없이 말하는 사람은 머릿속이 정리되어 있지 않다.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생각도 부정적이다.

말을 빠르게 하는 사람은 생각의 속도도 빠르다.

말을 느리게 하는 사람은 깊고 천천히 사유하는 사람이다.

툭툭 내뱉듯이 말하는 사람은 생각을 깊이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인자하게 말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인자한 성품의 사람이다.

항상 차갑게 톡톡 쏘는 사람은 냉정한 사람이다.


이렇게 열거하다 보니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내 몸은 단백질과 무기질, 지방 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지금까지 나를 지어 온 것은 내 행위이다. 그런데 그 행위들이나 내 인생의 결과물들을 어떠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나의 '말'이다.(속으로만 말하거나 소리 내어 말하거나 글로 표현하거나)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규정지으면 나는 좋은 사람이 된다.

적어도 말을 내뱉거나 속으로 규정해 버리면 그렇게 느끼게 된다. 그러면 행동도 그 규정에 따를 확률이 높다. 우린 본능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따르려 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라는 존재는 내 '머릿속 말'과 내가 의식적으로나 무심코 '내뱉은 말', 혹은 일기나 메시지 등, '글로 쓴 말'이나 '말로 내뱉는 글'로 물처럼 이어진다.

만약 그 물이 썩은 물이라면 그 흐름을 단칼에 잘라 수로를 변경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다. 그 상황을 눈앞에서 맞이하는 심정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이 글을 쓰면서 어떤 가이드라인을 따를지 잠시 고민했다.'그래. 내가 그렇지 뭐. 별수 있겠어'

아니면, '그래. 이런 일은 누구라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어. 내 잘못도 아니고. 설사 내 잘못이라도 그렇게 나쁜 일은 아냐. 이번 기회를 삼아 다음엔 이런 실수를 하지 말자. 따끔한 예방주사를 맞는 거라고 생각하자.'


이런 식으로 생각을 정리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마음속으로만 말고 소리 내어 발음해 보면 더 나을까.


"나는 강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겪는 일은 누구나 다 겪을 수 있는 흔한 일이다. 사실 별거 아니다."


이렇게 오늘도 나는 아슬아슬하게 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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