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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y 21. 2019

 빨대 안 쓰는 것쯤이야

구멍 난 양말을 기워 신는 것에 비하면

아파트 경비실을 지나다 보면 멀쩡한 가전제품이나 가구가 버려지는 게 보인다. 그중 수거용 스티커가 붙어있지 않은 물건들이 가끔 눈에 띈다. 그처럼 고장이 나지 않은 물건들은 며칠을 놓아둔다고 한다. 스티커를 붙이기 전에 필요한 사람이 먼저 가져가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땐 ‘가정환경조사서’라는 것이 있었다. 부모님의 학벌이나 직업 등을 자세히 적어 오라고 하기도 했는데,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했던 것이 가전제품 표시 난이었다.  

예를 들어 자기 집에 텔레비전, 냉장고 등이 있으면 표시를 하는 것이었다. 그땐 집에 냉장고 있는 학생이 몇 명 안 되었다. 그래서 주스로 얼음 얼려먹은 이야기를 자랑삼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요즘은 개인정보 보호법에 의해 학교에서는 학생의 주소나 연락처 등도 비밀리에 간수해야 한다. 그런데 학생 집에 무슨 가전제품이 있는지를 일일이 조사한다고 하면 난리가 날 것이다.   


만약 조사를 한다면 무슨 항목이 생길까? 각 가정마다 기호가 다 다르니 딱 잘라서 무슨 가전제품을 항목에 넣을지 고민이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오디오 시스템은 1억 원이 넘는 장비를 갖추고 있지만 자동차는 소형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자동차는 비싼 수입차인데 집은 소형 아파트인 경우도 있다.  획일화된 물건으로 부를 과시하는 풍조가 사라지는 추세다.  

덩치가 크고 값이 비싼 가전제품이나 가구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소품들은 버릴 때 망설임이 적다. 


내게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하나 있다. 바로 양말 한 짝들의 실종이다. 짝이 안 맞는 양말이 하도 많아서 똑같은 디자인의 양말을 사곤 한다. 


그런데도 제 짝이 안 맞는 양말들이 한 상자나 처분만 기다리고 있다. 구멍이 나진 않았지만 짝이 안 맞아서 버려야 하는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엔 양말에 구멍 나는 일이 흔했다. 구멍 난 양말은 전구를 넣어 입체 바느질을 하기도 했는데 그나마 구멍이 작은 것들은 꿰매기가 편했다. 문제는 너무 큰 구멍이었다. 그땐 비슷한 옷감을 덧대어 깁기도 했다.

요즘 구멍 난 양말은 보기 드문 일이 되었다. 일단 양말의 실이 닳아 구멍이 날 정도로 오래 신지도 않는다. 양말도 패션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화려한 문양, 재미있는 캐릭터나 문구를 양말에 넣는 일도 있다. 많은 것들이 흔해지고 있다. 조금 더 멋지고 재밌고 개성 있는 물건을 찾는 욕구도 많아지고 있다. 


문제는 쓰레기다.  

우리 아파트는 일요일마다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한다. 가끔씩 수거업체 문제가 생긴다. 지난주에 이어서 이번 일요일에도 방송이 나왔다. 플라스틱을 수거할 업체가 없으니 당분간 플라스틱 재활용품은 내놓지 말라고. 우리 집 한편에 산처럼 쌓여가는 플라스틱을 보자니 한숨이 나온다. 


먼저 빨대 없이 커피 마시는 습관부터 들이고 있다. 사실 이 정도 불편쯤 옛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양말 구멍을 깁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풍족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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