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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y 21. 2019

마당

어릴 적 세상을 나설 준비를 하던 곳

 아파트가 대세이다 보니 마당이라는 말이 점점 사라진다. 전원주택에서도 정원이라고 하지 굳이 마당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어릴 적 내 주변 사람들은 주로 아담한 주택에 살았는데 주택에는 꼭 마당이 있었다. 그 마당에는 등나무와 작은 화단이 있었고 그 화단에는 나팔꽃, 맨드라미, 분꽃이 있었다.  


 요즘은 그 꽃들이 잘 안 보인다. 장미에 비해서는 소박하지만 친근하고 예뻐 보였는데 말이다. 그 꽃들이 저녁에는 시들시들해져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아침에 다시 피어났다. 잠시 시들해져도 다시 활기차게 일어서는 힘. 어린 나는 어쩌면 그 꽃들을 보면서 막연히 희망이란 단어를 꿈꾸었는지도.  


 우리 집  마당에는 등나무도 있었다. 그 나무에 아빠가 그네를 매달아 주셨다. 한낮에 햇볕을 쬐며 등나무에 앉아 동화책을 읽다가 꾸벅꾸벅 졸던 기억이 난다. 마당은 세상을 나서기 전 인큐베이터 역할도 했다. 집집마다 다르긴 했지만 아이들이 어른 없이 외출하는 시기가 따로 있었다. 안방에서 마루로 또 앞마당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시기 말이다. 나는 네댓 살이 되어서야 우리 집 대문 밖을 혼자 나갈 수가 있었다. 그 전에는 형제들과 마당에서만 놀았다. 기둥에다 고무줄을 묶어놓고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공기놀이를 했다.


 마당은 참 쓸모가 많았다. 사회성이나 건강상태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했다. 봄이라고 옷을 얇게 입고 마당에서 놀다가 감기에라도 걸리면, 옷을 두껍게 입고 나가면 되었으니까. 또 형제들과 놀다가 싸우면 엄마가 나와서 즉석 미니 재판을 여는 곳이기도 했다. 비가 와서 바깥에 못 나가면 대신 마당에서 놀았다. 평상에 앉아 마당 흙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기도 하고, 지렁이 등을 관찰하기도 했다.


 겨울엔 눈사람 공장으로 변신했다. 형제 수마다 각각 하나씩의 눈사람을 만드는 통에 겨울이면 마당이 눈사람으로 꽉 찼다. 마당이 사라진 요즘 비가 오면 모두들 아파트 안에 틀어박힌다. 또 어딜 둘러봐도 흙을 만질 기회가 없다. 마당 바닥이 흙이라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기가 좋았다. 각종 꽃이나 나무, 벌레 등과 친하게 지냈다. 무엇보다도 마당은 햇빛과 가까워서 좋았다. 지금은 아파트 베란다로 들어오는 햇빛이 전부다. 그땐 마루와 연결된 평상에 앉아 하루 종일 햇볕을 쏘일수도 있었다.


 요즘 우울증이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세로토닌 부족이라고 한다. 하루 종일 건물 안에서만 생활하는 현대인들. 햇볕을 쬐려면 일부러 시간을 내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마당이 없는 폐해를 겪는다. 베란다가 있지만 협소함 때문에 마당에는 한 참 못 미친다.  

 일을 좋아하는 나지만 하루라도 빨리 은퇴하고 싶다. 마당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 살며 맨드라미와 나팔꽃을 심고 싶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그 꽃을 보고 싶다. 무엇보다 마당이 없는 아파트에 사는 손주들에게 실컷 마당을 뛰어다니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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