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밥솥을 들고 수리 점에 갔다. 기능이 많이 떨어져서다. 그런데 서비스 기사분 말씀이 부속품 등을 새로 교체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면서 새로 사는 게 낫다고 한다. 구입한 지 7년밖에 안 되었다고 하니 전기밥솥의 수명이 원래 그 정도라고. 곧이어 줄줄 읊으셨다. 세탁기, 냉장고, 텔레비전 등등의 수명연한이 얼마인지 말이다. 대체로 내 예상보다 짧았다.
절약 차원에서 어떻게든 고쳐 쓰려고 했지만 하는 수 없었다. 부속품이 왜 그리 비싸다며 밥솥을 다시 들고 수리점을 나왔다. 폐기 처분한 밥솥은 공해 물질로 둔갑할 텐데 마음이 편치 않다. 좀 튼튼하게 만들던가, 아니면 부속품을 장기적으로 구비해 놓아야 하지 않을까. 소비자들은 수리점에서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일반인들은 기계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회사 방침이 그렇다는데 딱히 할 말도 없는 것이다.
전기밥솥은 어느 가전제품보다 위세가 당당하다. 우리는 당장 전기밥솥이 고장 나면 어쩔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일반 냄비에다 밥을 하려면 물을 얼마나 부어야 하는지 불을 어느 시점에 줄여야 하는지, 또 뜸은 얼마나 들여야 하는지 등등이 골치 아프다. 어쩔 수 없이 밥솥을 사러 마트에 가서는 또 다른 문제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가격이 너무 비싼 것이다. 전에는 기본적인 사양의 저렴한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새로운 기술이 추가된 제품들로만 비싼 가격에 전시되어 있었다. 인공지능으로 각종 요리에 최적화된 열 감지 시스템 등.
그냥 밥만 하면 되는데 뭐가 그리 복잡할까 싶어서 외면하고만 싶다. 하지만 종잇장보다 얄팍한 내 의지력을 어쩌겠는가. 최신 기능 앞에서 예전 사양의 밥솥을 살 만한 배짱은 내게 없었다. 게다가 얼리어답터인 남편이 곁에서 거든다. 지금 최신형으로 사놓아야 그나마 나중에 밀리지 않는다고. 조금 지나면 또 업그레이드된 밥솥이 나와서 이것도 금방 낡은 것으로 보일 거라고 말이다. 밥솥이 컴퓨터도 아닌데 꼭 업그레이드를 할 필요가 있을까. 분기별로 사양이 갱신되는 휴대폰은 이제 밥솥까지도 최신형을 따라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을 준다. 그냥 밥을 짓는 솥일 뿐인데. 요즘 사람들은 이 전에 비해 밥을 많이 먹지 않는다. 식사를 한다는 뜻인 ‘밥을 먹는다.’는 그 하얀 백미로 지은 밥을 주로 연상시킨다. 전에는 반찬보다는 밥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밥을 먹었다’는 말에 밥을 수저로 듬뿍 퍼서 먹는 모습이 연상된다
어릴 적부터 밥에 얽힌 추억에는 뭔지 모를 아련함이 스며있다. 어릴 적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저녁이 되면 어슴푸레 노을이 진다. 저녁이 다 된 줄도 모르고 어둠에 익숙해진 우리들을 깨우는 것이 있었다. 바로 밥 냄새였다. 달큼하면서도 구수하게 등허리를 휘감아 오는 냄새였다.
그때의 노을은 지금과 그 빛깔이 달랐다. 붉게 타는 듯했고 구름에 비추인 무늬가 지금보다 훨씬 강렬했다. 그리고 적어도 내 기억에 ‘노을 냄새’라는 게 있었다. 밥 냄새와 저녁 이슬이 축축해져 오는 냄새가 뒤섞인 듯한. 그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식아. 와서 밥 먹어라.”, “순희야, 밥 먹어.” 이 소리가 들리면 하나둘 씩 집으로 간다. 그때 집에 늦게 돌아가는 아이들은 짝이 안 맞는 고무줄놀이를 한다.
이때가 평소 실력이 낮은 아이들에게는 기회의 시간이다. 짝이 안 맞으니 놀이 규칙도 소홀해지는 데다가 인원수가 적으니 자기 차례가 금방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때 온갖 시뮬레이션을 해보고는 혼자 다짐을 한다. 결코 내일은 실력이 없다고 깍두기 취급당하지 않겠노라고.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모으던 밥 냄새, 그때 집에 돌아와 한아름 팔에 끌어안고 우걱우걱 입에 퍼 넣던 밥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반찬이 뭐라도 상관이 없었다. 그때 밥을 안치던 밥솥은 인공지능 전기밥솥이 아니었다. 그저 무쇠솥이었다. 그런데도 요즘보다 훨씬 밥맛이 좋았다. 10년, 20년이 지나도 끄떡없는 무쇠솥. 그 변치 않는 든든함이 아쉽다. 그리고 노을이 지면 여기저기서 나던 밥 냄새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