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따뜻했던 공동체가 그립다
어린 시절 한 달에 한 번 월중 행사로 하는 것이 있었다. 집안마다 주기가 조금씩 달랐는데 우리 집은 한 달이었다. 한 달에 한번 목욕탕에 가서는 한 달 만에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집마다 목욕탕이 옥외에 있었기 때문이다. 옥외에다 높은 장독대를 만들고, 그 아래 부분에 목욕탕을 앉혔다. 그렇게라도 목욕탕이 있는 집은 그나마 잘 사는 집이었다.
목욕탕이 있는 집도 온수시설까진 없었다. 머리라도 감으려면 연탄불 아궁이에 커다란 솥을 올려 물을 데웠다. 또 찬물을 여러 바가지 물 타기 해서 사용했다. 머리 감은 물도 그냥 버리지 않았다. 그 물은 다시 빨래에 재활용되었고, 빨래한 물은 마당 청소에 쓰였다.
세탁기가 없던 시절, 목욕뿐만 아니라 빨래도 자주 하기 힘들었다. 옷도 지금처럼 자주 갈아입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 몸에선 나쁜 냄새가 나지 않았을까? 영화 ‘기생충’에선 가난한 냄새와 부자 냄새가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각자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기에 생활이 밴 냄새가 다르다. 냄새는 공동체 문화를 나타낸다. 같은 공동체 안에서는 냄새를 의식하지 못한다. 그 사이에 가로놓여진 사다리를 건너면 비로소 알게 된다. 자기에게 익숙한 냄새와 아주 다르다는 걸.
예전엔 지금보다 냄새에 둔감했다. 주변 사람들 몸에서 냄새가 난다면서 힘들어 한 기억이 없다. 지금 그 시절 그 장소로 가서 맡아보는 상상을 해봤다. 그 시절 어린 나에게로 훌쩍 날아가 그 옆에 지금 앉는다면 코를 틀어막고 소리칠 것이다. “이 노숙자 아이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6, 70년대로 돌아가 그들의 사는 모습을 본다는 것, 무엇보다 그들의 냄새를 맡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그와 비슷한 일을 겪어봤다. 거의 20년 전 중국 상해에 갔다. 그때 조선족이나 한족에게선 퀴퀴한 냄새가 났다. 민족 특유의 냄새가 아닌 것 같았다. 중국 부자들에게선 나지 않았으니. 이는 목욕시설이 있고 없고의 차이였다.
상해 겨울은 건조하고 으스스하다. 우리나라 같은 온돌시설이 없다. 집에서 목욕한 번 하는 게 힘들다. 또 중국 사람들 사이엔 머리를 자주 감으면 두통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기도 하다. 뉴스에 나오는 중국 고위 여자 간부 머리가 떡이 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 6, 70년대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한 현재 중국은 많이 달라졌지만.
어릴 때 미국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퇴근해서 곧바로 샤워하는 장면이 나왔다. 서양 사람들은 매일 목욕을 한다는 말을 듣고는 설마 하고 의심을 했다. 월례 행사를 매일 하다니, 하며.
그땐 겨울에만 대중목욕탕에 가고 여름엔 마당에서 목욕을 했다. ‘등목’이다. ‘등 목욕’의 줄임 말일 것이다. 목욕 한번 하기가 힘들었던 시절, 특히 여름엔 전신 목욕을 대신했던 간이 목욕법이다. 목욕할 사람이 윗도리를 벗고 양손과 양발로 땅을 짚고 엎드리면, 다른 사람이 등 위에 바가지로 물을 뿌려주는 것이다. 이때 등을 손으로 문질러주기도 했다. 엎드린 사람은 이때 대부분 비명을 지른다. 차가움과 시원함의 차이를 실감하며. 이때 물을 뿌리는 사람은 엄살 피우지 말라며 등짝을 후려치기도 한다.
지금도 어릴 적 등목의 촉감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때의 물은 지금처럼 수돗물이 아니었다. 뽐뿌(펌프)라는 기계로 지하수 물을 퍼 올린 건데, 지하수는 더운 여름엔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아서 무척 시원했다. 시원한 바가지 물세례를 받고 나서, 수박을 와작 거리면서 먹으면 여름이 저만치 물러갔다.
문득 궁금하다. 그때의 ‘하하’, ‘호호’와 끊이지 않던 웃음소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때는 이런 등목 이벤트 하나로도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나들었다. 올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에어컨 앞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거리며 마시곤 했다. 하지만 어릴 적 펌프 물 등목과 수박 한 덩이만큼의 시원함에는 못 미쳤다.
그런 종류의 시원함에는 물리적인 요소만 있는 건 아닌가 보다. 내밀한 개인의식인 목욕. 이 목욕을 도와주면서 느끼는 친밀감과 청량한 웃음소리 때문일 것이다. 그땐 ‘함께’가 ‘궁핍’을 이불처럼 덮곤 했다.
코로나 거리두기로 인해 공동체 문화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서로 가까이 냄새 맡을 일이 사라진다. 마스크까지 쓰니, 점심식사로 삼겹살에 생마늘을 먹을 정도다. 그렇다고 ‘가난한 냄새’까지 사라질까? 각종 통계를 보면 코로나 이전보다 빈부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서로의 냄새를 맡지 못하는 사이, 마스크 안에서 '냄새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지고 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