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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y 23. 2019

순대볶음의 비밀

동생은 순대볶음의 비밀을 가져가는 대신 별들을 남겨두었다

친구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한다. 순대볶음을 잘하는 집이라고 하는데 먹어보니 확실히 맛이 있었다.


집에 와서도 자꾸 생각이 나길래 똑같이 만들어 보았다. 재료들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데 내 기억력의 문제일까? 아니면 그 집만의 양념 비법이 존재하는 걸까? 분명 그 음식점 하고 똑같이 재료를 넣었는데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비법이 뭘까? 하고 고민하다가 조미료로 마무리해버렸다.    

 

문득 동생이 떠올랐다. 벌써 19년이 지났다. 바로 밑의 여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날이.


그때 동생은 30대 초반이었다. 동생은 요리를 아주 잘했는데 특히 냉면이나 갈비탕 등 식당에서 사 먹는 음식들을 곧잘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순대볶음은 유명 맛집 수준이었다.   

   

동생은 자기가 만들어준 음식을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때마다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그때 열심히 먹던 내가 동생에게 비법을 물어본 적이 있다. 순대볶음에 무엇을 넣어서 이렇게 맛있느냐고.


그때 동생은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먹느라고 정신이 팔려 다시 물어보지 않은 점이 후회된다.


서너 달 후 동생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요즘도 가끔 꿈에서 동생을 본다. 그런데 30대 초반까지 살다 간 동생꿈에서는 열 살 무렵으로 고정되어 있다. 동생은 성격이 거칠고 힘이 세어서 꼭 머슴애 같았다. 그래서 나랑 곧잘 싸우곤 했다.


물론 내가 일방적으로 맞았다. 동생한테 심하게 맞아서 코피를 흘린 적도 있다. 게다가 운동신경이 좋아서 내가 때리려고 하면 몸을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녔다.      


한 번은 1층에서 2층으로 붙잡으러 따라갔는데 동생이 2층 옥상에서 대문 로 날아간 적이 있다. 그 당시 슈퍼맨이 인기는데 하늘을 나는 장면을 따라한 것 같았다.


그런데도 하나도 다치지 않은 신출귀몰의 아이였다.      


동생이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일이 생각난다. 그때 나랑 산책을 하던 동생이 갑자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당시 동생은 요양차 전원주택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하늘엔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어떤 별자리는 우리 자매에게 낯이 익었다.


도시에 살면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을 뿐, 어릴 적 장독대에 올라 하늘을 스케치북 삼아 손가락으로 점들을 이어보곤 했으니까.


동생이 말했다.

“저 별 진짜 오래되었어. 그렇지? 내년 이 시간에도 저 별은 저기 저렇게 있겠지? 그리고 나는...”


그때 동생은 말을 잇지 않고 흐렸다. 깜깜한 밤이라 다행이었다. 우는 내 얼굴을 동생이 볼 수 없어서. 그때 동생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간혹 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그때 동생이 하려고 했던 말의 뒷부분을 내 맘대로  덧대 보곤 한다.

“그리고 나는... 이 세상에 아마 없을 거야. 언니. 그런데 말이야. 언니는 내 몫까지 열심히 살아. 내 사랑스러운 조카도 예쁘게 잘 키우고. 형부랑 싸우지 좀 말고. 사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건지 알아? 저 아름다운 별들을 계속 볼 수 있다는 것 말이야.”    

 

동생이 어제 꿈에 나타났다. 역시나 아직 어린 시절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랑 싸웠다. 자기가 새로 산 지우개를 내가 가져갔다는 것이다.


나는 아니라고 우기면서 약 올리다가 주먹으로 한 대 얻어맞았다. 꿈에서는 이렇게 항상 싸운다. 꿈에서는 ‘동생이 없으면 얼마나 편할까?’ 생각도 해 본다.      


그러나 꿈에서 깨고 나면 마음이 바뀐다. 동생 손을 단 한 번만 잡아 볼 수 있다면 하고 말이다.  또 있다. 그때 순대볶음 양념에 뭐가 들어갔는지, 그거 하나 꼭 물어보고 싶다.


궁금한 것을 가슴에 묻어두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대신 하늘을 본다. 별들이 아직 내 머리 위에 있다는 사실을  수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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