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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y 27. 2019

이젠, 꼰대로 빠지려 하다니

이제야 겨우 나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나 자신을 사랑하는데 오래 걸렸다. 50살이 넘어서 겨우 나 자신이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멋진 나를 몰라보다니 하면서 한편으로 지난 시간이 아깝기까지 했다.


직장에서도 관리자 외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없어서일까?  이제 나에게 잔소릴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시부모님 대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적어졌고 아이들이나 남편도 이제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게 내 노력인 줄 알았다. 하지만 상당 부분 나이 때문이란 걸 알았다. 며칠 전 남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내가 같은 말을 자꾸 반복하는 것에 대한 충고였는데, 그 안에는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충고가 들어있음을 알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다, ‘이 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건데?’ 하면서 갑자기, ‘가만있어보자. 그럼, 내가 꼰대 짓을 한 건가?라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렇게도 싫어하던 꼰대 아줌마, 아저씨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마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듯이 슬금슬금 그 자리까지 나도 모르게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시간이 오면 쓰려고, 그동안 머릿속에 저장해두던 꼰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보았다.


1. 최근 주변에 나를 혼내는 사람이 없다.


2. 전철을 타면 약자 우대석 쪽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3. 그리고 그 좌석에 젊은 아가씨가 앉아서 자신의 얼굴에 팩트를 두드리고 있으면, 한마디 해주고 싶다.


4. 뉴스를 보면서 혀를 쯧쯧 찬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요즘처럼 시대가 어수선한 적은 없었어.”라고 중얼거리면서.


5. 어떤 책을 읽어도 내가 다 아는 내용을 쓴 것 같다.


6. 모임에 나가면 말을 제일 많이 한다.


7. 누군가에게 충고성 말을 자주 한다. 물론 나는 그걸 충고라고 생각하지 않고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사람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은 게 이해가 안 간다.


8. 기껏 시간을 내서 충고를 해주는데 성의 없이 받아들이면, 말 뜻을 못 알아들은 줄 알고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해주는 배려를 한다.


9. 그동안 나를 못난 사람이라고 자책하며 살던 시간이 후회된다. 가끔 모든 면에서 내가 완전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10. 친구가 나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해주면 반성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친구가 나를 질투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두 내 기준으로 적어본 것들이다.     


나는 그동안 나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나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흐려져 가고 있었던 걸까?


도덕 시간에 배려와 나눔에 대해 가르칠 때였다. 자신이 가진 자그마한 재능도 남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했다.


자신이 가진 재능 중 남에게 주고 싶은 것이나 남에게서 얻고 싶은 재능을 쓰라고 했다. 그때 한 여학생이 쓴 내용이 특이했다.


그 학생의 쪽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동생을 잘 놀리는 방법’


부정적인 도움을 원한 것도 그렇고, 나는 그 학생이 잘 놀아주는 방법을 잘 못 쓴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맞는다고 한다. 왜 동생을 놀리고 싶으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자기를 너무 괴롭히는데 자기는 동생이 어떤 부분에서 화가 나는지 잘 몰라서란다. 겨우 4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잘 모르다니.


얄팍한 인간의 기억력이란.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오해하고 살았던 수많은 장면들이 내 눈앞에. 그리고 반성이 되었다.


 나는 혹시 그동안 남들에게 위로를 해준답시고, 그럴싸한 나 자신을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오히려 2차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까?
 
그 후로 남의 고민을 잘 들어주는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다. 그들은 오로지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이든 무조건 상대방을 지지해준다.


그렇지 않아도 상처 받은 사람은 신경이 쇠약해져 있다. 그들에게 또다시 꼿꼿하게 사실을 나열하고 분석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그동안 내가 그래 왔던 것이다.
 
특히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내가 행한 잔인한 말들.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남편이 회사에서 일어난 일을 집에 와서 말하는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꼬장꼬장하게 사실을 분석하려 했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자연히 회사를 두둔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회사 간부가 기분 나쁜 말을 했다고 하면, "원래 부하직원 다스리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냐?" 하면서 상사를 두둔했다. 그게 마치 진리이고 나는 객관적인 사람이다.라는 듯이.
 
나만의 자를 뒷주머니에 꽂고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 자로 꺼내어 재어 보고는 길다, 짧다 단정 지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위로는커녕 상처만 받고 돌아서게 된다. 나이가 드니 나를 혼낼 사람보다 내가 남을 혼낼 일이 더 많아진다. 내가 더 성숙해서가 아니라 단지 나이가 더 많다는 이유로.
 
나이가 들수록 자기만의 자를 밀쳐두는 건 어떨까? 아무런 편견 없이, 별다른 판단을 하지 말고 대화를  할 때는 고개만 끄덕거리면서 남과 똑같은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다.


이때 말은 별로 필요가 없다. 섣부른 충고는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이다. 대신 따뜻한 미소만 준비하면 된다.


대부분 누가 술을 산다고 하면 그 술값만큼 이야기 들어줄 채비를 하고 나가게 된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은 인간관계가 좋을 수밖에 없다.


남을 향한 공감능력과 부드러운 화술이 필요한 때이다. 특히 꼰대 소릴 듣기 딱 좋은, 내 나이뻘 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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