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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y 28. 2019

할머니, 할아버지 패피들

나이가 들어도 자신을 가꾸는 당당함

닉 우스터라는 할아버지 패피(패션 피플)가 있다. 그동안 멋쟁이 할아버지로 소개되는 글을 보고 모델 출신인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 그 할아버지 키가 170센티미터도 안 되고, 체격 조건도 훌륭하지 않다는  알게 되었다. 그럼에과감한 패션을 선보인다. 자신의 체형을 잘 연구하고 자신에게  최적화된 패션을 찾아간 결과라고 생각된다.


몇 년 전 방영되었던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중 ‘윤 식당 ’이라는 것이 있는데, “식당 운영하는 모습이 뭐가 그리 재미있겠어?” 하던 예상과 달리 꽤 인기가 있었다. 촬영지였던 섬의 여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지친 도시인들의 가슴에 파고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다른 시각으로 그 프로그램에 매료되었다. 식당의 주인이자 요리사인  배우 윤여정 씨다. 반바지 랑 티셔츠 하나만 걸쳐도 드러나는 스타일리시함과 스타일을 완성하는 당당함 때문이었다. 평소 그녀의 스타일은 20대들도 따라 한다고 할 정도로 감각적이다.


요즘  드라마나 광고를 보면 전에 비해 중장년 배우들이 꽤 많이 보다. 나이가 들어도 젊을 때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늘씬하고 멋진 여배우도 많다. 젊은이들의 전유물이었던 매스 미디어 흐름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데,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미 광고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용하고 있다. 손주를 넘어서 증손자까지 볼 나이에 패션모델이 된 경우도 있는데, 90세 넘은 모델도 꽤 있고, 60세는 실버모델 중 젊은 축에 속한다.


미국 카르멘 델로피체라는 모델이 있다. 박사학위 소지자인 그녀는 80세가 훌쩍 넘었는데도 지적이며 여전히 섹시하고 아름답다. 100 세를 코앞에 남겨둔 Emi라는 할머니 모델은 심지어 일반 직장인처럼 11시 정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데, 가슴골이 깊게 파인 재킷을 입은 사진을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당당하고 깊이 있는 섹시함 때문이다. 90세 넘은 할머니의 섹시함은 자신만의 멋을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몸보다 뇌가 섹시한 것이다.


할머니 모델들은 말한다. 젊은 모델들이 지나치게 굶어서 살을 빼는데 이는 건강에 무척 해롭다고. 할머니 모델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위해 하는 관리라 무리를 하지 않는다. 유기농 식품과 야채, 과일 위주로 건강을 챙기기 때문에 일반 할머니들보다 훨씬 건강하다고.


실버 모델들이 모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단지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거나 되돌리는데 관심이 있을까? 아니다. 화보에서 보이는 할머니 모델들은 주름이 온몸에 그대로 드러난다. 심지어 현재 72세인 헬렌 미렌이라는 미국 여배우는 화보를 찍을 때, 자기 얼굴에 작은 보정작업도 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얼굴의 주름 하나하나는 스토리가 담겨있는 삶의 훈장인데, 함부로 젊은이들의 잣대로 수정해서 그 훈장을 없애지 말라는 뜻이다.


실버모델들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가 뭘까?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FT)가 ‘현명하고, 더 부유한 ’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언급한 '가장 핫한 트렌드'란 바로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할머니 모델 기용이다. 세계적인 불경기 탓에 주머니가 얇아진 젊은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유한 실버계층을 겨냥한 시장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마케팅 ·트렌드 전문가들은 사회가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데 주목한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할머니 모델을 내세우는 광고는 노인에 대한 이미지가 과거와 달라졌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전에는 노인, 특히 할머니라고 하면 무조건 젊은 층이 보살펴줘야만 하는 수동적인 약자 집단 시선으로만 바라봤다 "며, "하지만 구매력을 무기로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는 '젊은' 할머니가 늘면서 돌봄의 대상에서 동경의 대상으로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 "고 덧붙였다.


 80세가 넘더라도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갖고 있다면, 스타일 아이콘이 될 수 있는 시대라는 것. 또한 역설적으로  대중이 선망하는 노년의 이미지를 담아 동경심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광고에 등장하는 할머니 모델은 오히려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주장이다.


이 놀라운 모델들의 얼굴은 쉽게 만들어진 게 아니다. 평소 행동과 말투 같은 습관이 쌓이고 인격이 되어  결과물이 얼굴에 정착한 것이다. 나이가 들면 얼굴에 모든 게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끔 타고난 미모가 그 결점을  가릴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얼굴에 하나 둘 주름이 뒤덮일 때쯤이면,  화장품으로도 주름을 메울 수가 없다.


그렇다고 실리콘 덩어리로 채운다던가, 정기적으로 보톡스를 맞아 탄력을 유지하는 얼굴은  부자연스러움 때문에 더욱 보기가 흉하다.


미레 우 길리아노가 쓴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에는 그 자연스러움을 강조한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그 모습을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보내는 메시지를 통제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나 자신을 돌보고 현재의 내 이미지를 가장 멋지게 드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프랑스식으로 멋지고 당당하게 나이 먹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기분 좋게 인정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애쓴다. 그리고 자기만의 개성을 가꾼다. 즉 마음가짐이 노화를 방지하는 마법의 묘약이라고 한다.’


카뜨린느 드뇌브, 소피 마르소 등 프랑스 배우들은 나이가 들어도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이렇듯 프랑스인 저변에 깔린 나이 듦에 대한 긍정적인 철학이 있기에 가능하다. 개성 있는 삶을 가꾸며, 당당하고 긍정적으로 나이를 먹는 것 말이다.


 얼마 전 전철 안에서 당당하고 아름다운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염색을 하지 않은 하얗게 센 단발머리 베이지색 깔끔한 차림에 멋진 로퍼를 신고 큼직한 카키색 가방을 메고 계셨는데, 차림새보다 더 멋진 건 요즘 멸종되다시피 한 ‘전철 독서 족 '의 모습이었다.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끼고 말이다.


나는 그 모습에 반해서 한 참을 쳐다보다가 내릴 역을 지나칠 뻔했다. 그리고 20 대 대부터 자주 해 오던 상상, 즉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나도 몇 년 지나면 드디어 할머니 소릴 듣게 된다.


그런데 내가 뒷방 늙은이 이미지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숙성되어 더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포도주처럼 말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다.


그리고 내면의 성숙도에 더해 외모마저도 근사하다면 좋겠다. 젊은이 옆에 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블로그 등을 통해 멋지게 꾸민 나의 사진을 꾸준히 올리고  책으로 엮어내는 것이다. 미래의 이 패션 화보 책은 현재 나의 버킷리스트인데, 시기는 70 세 이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정도 나이가 되어야 진정한 성숙이 이루어질 듯하니 말이다. 또한 나에게 가장 잘 맞는 화장법이나 헤어스타일,  패션은 어떤 것인지 그때쯤 되어야 완성될 듯하다. 단 평생 나만의 스타일을 찾는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이미 패션 화보집 제목까지 정했다.- ‘나는 늙지 않는다. 다만 완성될 뿐이다.’ 나이가 드는 것을 ‘늙는다 ’라고 표현하는 건 가구의 ‘낡는다 ’처럼 들려서 싫다.  대신 하나하나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는, 자아 완성으로 보고 싶다. 그러면 나이 드는 것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이 될까? 그래서 더 나아가, “빨리 나이가 들고 싶다.”라고 면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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