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내용과 형식의 관계

플랑세캉스를 중심으로 [몸값]과 [거미집]을 보다

by 김형범


예술 작품에서 내용과 형식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내용이 형식보다 우선시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헤겔의 변증법적 사고는 형식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헤겔은 내용과 형식이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며 발전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예술에서 형식이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었죠.


이러한 관점은 영화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영화는 내용과 형식의 결합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주제, 이야기 등을 의미하고, 형식은 그 내용을 담아내는 방식, 즉 영화적 기법과 스타일을 가리킵니다. 영화에서 내용과 형식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원씬 원테이크, 즉 플랑세캉스는 내용과 형식의 조화로운 결합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플랑세캉스는 하나의 숏으로 이루어진 장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편집 없이 길게 이어지는 장면을 통해 사실성과 현장감을 부여합니다. 이는 내용의 사실성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형식적 장치인 셈이죠.


단편영화 [몸값]은 플랑세캉스를 통해 내용의 긴장감을 극대화합니다. 원조교제를 하러 온 남녀의 대화에서 시작해 장기매매 조직으로 반전되는 이야기를 원테이크로 담아냄으로써, 등장인물들의 불안감과 위기감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만약 이 영화가 컷으로 분절되어 있었다면 그 긴박함과 반전의 충격이 약화되었을 것입니다. 즉, 플랑세캉스가 내용의 긴장감과 반전을 뒷받침하는 형식적 도구로 활용된 것이죠.

단평영화 몸값(2015)

장편영화 [거미집]에서는 플랑세캉스가 감독의 열정을 표현하는 메타포로 사용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컷으로 찍으려는 감독의 집념은 그의 영화에 대한 열정을 상징합니다. 동시에 플랑세캉스는 이 영화의 정점을 형식적으로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즉, 플랑세캉스는 내용상의 절정을 형식의 절정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장편영화 거미집(2023)

[몸값]과 [거미집]은 모두 플랑세캉스를 통해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적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형식이 내용을 표현하는 동시에, 내용 또한 형식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이는 영화에서 내용과 형식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임을 증명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종종 내용에만 집중하곤 합니다. 하지만 형식에도 주목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감독이 특정한 형식을 선택한 이유, 그 형식이 내용에 미치는 영향 등을 생각해보면 영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한층 넓어질 것입니다. 나아가 이는 일상의 다양한 예술 작품과 콘텐츠를 감상할 때에도 적용할 수 있는 통찰력입니다. 내용과 형식의 관계에 주목하는 눈을 기른다면, 우리는 세상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영화에서 시작된 내용과 형식에 대한 고찰이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반짝이는 지혜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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