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범 Jul 23. 2024

북촌의 경고: 관광 천국의 이면

오버투어리즘의 그림자, 바르셀로나에서 배우는 교훈

서울 북촌한옥마을의 고즈넉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에 취해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풍경 뒤에는 주민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북촌은 지금 '오버투어리즘'이라는 전 세계적 현상의 한국판 축소모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대형 관광버스가 좁은 골목을 오가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주민들의 사생활을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을 찍거나 집 안을 들여다보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심지어 주민들의 집 대문 앞에서 용변을 보는 등의 극단적인 사례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일상은 크게 제한되었고, 일부는 견디다 못해 오랫동안 살아온 터전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북촌의 모습은 세계적인 관광도시들이 겪고 있는 문제의 축소판입니다. 특히 최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상황은 북촌의 미래를 예견하는 듯합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얼마 전 약 3000명의 주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관광객들은 집으로 돌아가라"라고 외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들은 관광객들에게 물을 뿌리고 물건을 던지는 등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바르셀로나의 관광객 수는 1990년 170만 명에서 2023년 780만 명으로 급증했고, 이에 따라 호텔 수도 4배나 늘어났습니다. 크루즈선을 통해 하루에도 수천 명의 관광객이 유입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지난 10년간 임대료가 68%나 상승해 많은 현지인들이 더 이상 도시에 거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북촌도 이와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떠난 자리에 무인 한옥스테이 등의 숙박시설이 들어서면서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이는 다시 남은 주민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북촌이 실제 주민 없이 관광객만을 위한 '가짜 마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시장은 최근 에어비앤비 스타일의 단기 임대를 2028년까지 전면 금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를 통해 약 1만 채의 아파트가 장기 임대 시장으로 돌아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북촌에서도 종로구가 오후 5시 이후 관광객 출입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유명 관광지들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는 최근 당일치기 관광객에게 입장료를 부과하기 시작했고, 미국 하와이는 관광객들에게 환경세를 부과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과연 관광의 즐거움과 지역 주민의 삶, 그리고 환경 보존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관광지를 단순히 '놀다 오는 곳'이 아닌 '사람이 사는 곳'으로 인식하는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북촌한옥마을의 현재 모습은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관광의 미래를 위해서는 관광객, 주민, 정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북촌의 고즈넉한 골목길이, 바르셀로나의 활기찬 거리가, 그리고 세계 곳곳의 특별한 장소들이 진정한 모습을 잃지 않고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북촌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관광의 미래를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할 때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신파, 꼭 나쁜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