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워싱, 그것은 할리우드의 오랜 관행이었습니다. 백인 배우가 유색인종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마치 당연한 듯 여겨졌죠. 이는 소수 인종의 대표성을 무시하고, 그들의 문화를 왜곡하는 문제적 행위였습니다.
고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보면, 백인 배우 미키 루니가 아시아인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눈을 찢고 이빨을 튀어나오게 분장했어요. 이는 당시에는 웃음을 자아내는 코미디 요소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명백한 인종차별이죠.
티파니에서 아침을 스틸컷_아시아인으로 출연한 미키루니
최근의 사례를 보아도 이런 관행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실사판에서는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 역할에 스칼렛 요한슨이 캐스팅되었어요. 원작의 정체성을 완전히 무시한 결정이었죠. 이는 많은 팬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공각기동대 (좌)영화 (우)애니메이션
마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원작 만화에서 에인션트 원은 티베트 출신의 남성 캐릭터였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 역할을 틸다 스윈튼이 맡았죠. 백인 여성 배우가 아시아 남성 캐릭터를 연기한 것입니다. 제작진은 이를 두고 '관습적인 아시아인 묘사를 피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해명했지만, 많은 이들은 이를 인종차별로 받아들였습니다.
닥터스트레인지 (좌)영화 (우)코믹스
이런 화이트워싱 관행은 여러 문제를 낳았어요. 무엇보다 소수 인종 배우들의 연기 기회를 박탈했죠. 그들이 자신의 문화를 대변할 기회를 빼앗은 것입니다. 나아가 관객들 역시 스크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지 못하게 만들었어요. 이는 문화적 공감대 형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스타워즈' 시리즈의 새 작품 '애콜라이트'는 이런 관행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마스터 제다이 솔 역할에 한국 배우 이정재가 캐스팅된 것이죠. 이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스타워즈'의 제다이 사상 자체가 동양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에요.
애콜라이트(2024)
'스타워즈'의 핵심 개념인 '포스'는 동양 사상의 '기(氣)'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다이 나이트의 수련 과정과 전투 방식도 동양의 무술을 연상케 하죠. 그런데 그간 이 동양적 정신세계를 구현하는 역할은 주로 백인 배우들이 맡아왔습니다. 일종의 문화적 차용이었던 셈이에요.
하지만 이제, 47년 만에 처음으로 아시아 배우가 직접 그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입니다. 동양 사상에 기반한 제다이를, 동양인 배우가 연기하게 된 거죠. 이는 일종의 정의 구현이라 할 만합니다. 문화적 뿌리에 대한 존중이자, 그간의 부당한 관행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니까요.
초반에는 이정재의 캐스팅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어요. 과연 아시아 배우가 '스타워즈'라는 큰 프랜차이즈에서 주연을 소화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많았죠. 그러나 드라마가 공개되자 반응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그의 연기는 극찬을 받았고, 작품은 흥행에 성공했어요. 아시아 배우의 등장이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왔고, 새로운 팬층을 '스타워즈'에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희망적인 신호입니다. 변화는 가능하다는 것을, 다양성의 수용이 새로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니까요. 할리우드의 오랜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변화의 물꼬가 트이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어요.
앞으로 이런 변화가 지속되고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스크린 속에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존중받는 날, 우리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 날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화이트워싱이라는 오랜 관행의 종말을,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