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의 위기에 부쳐
영화의 탄생을 논할 때 우리는 흔히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 상영을 떠올립니다. 1895년 12월 28일,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열린 이 상영회는 영화사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되었죠. 하지만 영화의 기원을 말할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토머스 에디슨입니다.
에디슨과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의 초기 발전 과정에서 서로 다른 비전을 품고 경쟁했던 인물들입니다. 에디슨은 영화를 개인적 경험으로 바라보았고, 키네토스코프와 같은 1인용 시청 장치의 개발에 주력했죠. 반면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를 집단적 경험의 대상으로 여기고, 시네마토그래프를 통한 대규모 상영에 방점을 두었습니다.
역사는 뤼미에르 형제의 손을 들어주었고, '영화'라는 이름은 집단 관람의 맥락과 함께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영화관은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죠. 우리는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고, 그곳에서 웃고, 울고, 때론 진한 감동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나 12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새로운 변화의 조짐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개인 디바이스의 발달은 영화 시청의 개인화를 가속화하고 있죠. 극장이 아닌 집, 이동 중인 지하철, 심지어 산책로에서도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된 겁니다. OTT 플랫폼의 약진은 이러한 변화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러한 변화에 가속도를 붙였습니다. 극장은 문을 닫거나 한산해졌고, 집에서 안전하게 영화를 즐기는 것이 일상이 되었죠. 마치 100여 년 전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전환기처럼, 우리는 또 다른 영화사적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에디슨의 선구적 통찰은 새삼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그가 그렸던 개인화된 영화 경험의 미래는 지금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으니까요. 동시에 뤼미에르 형제가 제시한 영화관의 집단적 경험도 여전히 유효할 것입니다. 영화관만이 선사할 수 있는 대형 스크린의 몰입감, 웅장한 사운드, 그리고 타인과 함께 호흡하는 감동은 결코 가볍게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영화의 본질을 붙잡는 것입니다. 에디슨이 상상했든, 뤼미에르 형제가 개척했든, 영화는 어디까지나 인간 보편의 감정과 경험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합니다. 새로운 기술과 플랫폼은 그러한 영화의 힘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새로운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영화관에서, OTT 플랫폼에서, 혹은 우리가 아직 예상치 못한 새로운 공간에서 말이죠. 그 모든 영화가 에디슨과 뤼미에르 형제의 유산을 떠안은 채,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변화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우리에게 감동을 전하는 한, 그 여정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한, 영화의 빛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 곁을 비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