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위기 시리즈 21편
우리 집 찬장을 열어보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요? 아마도 많은 분들의 찬장에는 크기와 디자인이 각양각색인 텀블러들이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적게는 4~5개, 많게는 20개가 넘는 텀블러를 소유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많은 텀블러를 모으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과연 이 많은 텀블러들이 정말로 환경에 도움이 되고 있을까요?
텀블러는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등장했습니다. 처음에는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구입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새 텀블러는 단순한 용기를 넘어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 되었고, 브랜드의 한정판 상품으로 출시되어 수집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찬장은 점점 더 많은 텀블러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텀블러 하나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환경 비용은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연구에 따르면, 스테인리스 스틸 텀블러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와 자원은 일회용 종이컵 1,000개를 만드는 것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이는 텀블러 하나가 최소 1,000번은 사용되어야 환경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 숫자를 우리의 현실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매일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하루에 한 번씩 텀블러를 사용한다면, 1,000번 사용하는 데 약 3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한 개가 아닌 여러 개의 텀블러를 가지고 있죠. 5개의 텀블러를 번갈아 사용한다면, 각 텀블러가 1,000번 사용되는 데 15년이 걸립니다. 20개라면 어떨까요? 무려 6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계산은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환경을 위해 좋은 뜻으로 시작한 행동이,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환경에 부담을 주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텀블러를 구매할 때마다 우리는 미래의 지구에 빚을 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 빚을 갚으려면 정말 오랜 시간 동안 그 텀블러를 사용해야 합니다.
텀블러 뿐만 아니라 에코백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에코백 역시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패션 아이템으로, 혹은 기업의 홍보 상품으로 무분별하게 제작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국 환경청의 연구에 따르면, 면으로 만든 에코백 하나는 최소 131번 이상 사용해야 비닐봉지 한 장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가진 모든 에코백을 131번씩 사용한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오래, 그렇게 자주 에코백을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리바운드 효과'라고 부릅니다. 환경 보호를 위한 노력이 오히려 더 많은 소비로 이어져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선한 의도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소비 습관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새로운 텀블러나 에코백을 구매하기 전에, 정말로 필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오래, 자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이러한 제품들을 선물하는 문화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받는 사람이 정말 필요로 하고 사용할 것인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은 귀중합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올바른 방향으로 실천되고 있는지 늘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지구의 미래를 만들어갑니다. 찬장 속 텀블러들과 옷장 속 에코백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소비 습관과 환경에 대한 책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진정한 환경 보호는 새로운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오래 사용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 모두가 이 사실을 기억하고 실천한다면,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