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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범 Sep 10. 2024

걸음으로 그린 예술, 리처드 롱의 혁명

A Line Made by Walking, 현대 예술의 새로운 지평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발자국을 남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발자국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오늘 우리가 이야기할 작품은 바로 이런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영국의 예술가 리처드 롱이 1967년에 만든 '라인 메이드 바이 워킹(A Line Made by Walking)'이라는 작품입니다.


리처드 롱은 당시 22세의 젊은 미술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브리스톨의 집과 런던의 학교를 오가는 긴 여정 중에 문득 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걷는 행위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단순하면서도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윌트셔의 들판에 멈춰 섭니다.

롱은 풀밭 위를 같은 경로로 계속해서 걸었습니다. 그의 발걸음이 만들어낸 흔적은 점점 뚜렷해졌고, 마침내 하나의 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모습을 흑백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라인 메이드 바이 워킹'입니다.


이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혁신적이었습니다. 첫째, 걷는 단순한 행위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둘째, 예술 작품이 반드시 영구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제시했습니다. 셋째, 작품의 과정과 그 기록이 모두 예술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냈습니다.


롱의 이 작품은 대지 예술(Land Art)과 개념 예술(Conceptual Art)의 초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대지 예술은 자연 환경을 재료나 배경으로 사용하는 예술 형태를 말합니다. 개념 예술은 작품의 아이디어나 개념을 물리적 형태보다 중요하게 여깁니다. '라인 메이드 바이 워킹'은 이 두 가지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롱은 이후로도 걷기를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페루의 광활한 평원을 가로지르는 좁은 길, 볼리비아의 긴 직선, 네팔의 숲속 길 등 세계 각지에서 그의 '걷기 예술'은 계속되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라인 메이드 바이 워킹'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리처드 롱의 작품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의 일상적인 행위들이 어떻게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롱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라인 메이드 바이 워킹'은 단순한 예술 작품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모든 길,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다음에 산책을 나갈 때, 여러분의 발자국을 한번 살펴보세요. 그리고 생각해보세요. 당신의 걸음이 만들어내는 선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당신의 일상적인 행동들이 어떤 예술을 만들어내고 있나요? 리처드 롱의 '라인 메이드 바이 워킹'은 우리 모두가 일상 속에서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예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발걸음 속에, 우리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 리처드 롱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이 소중한 깨달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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