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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범 Oct 02. 2024

가보지 못한 영화제 이야기

예산 삭감이 남긴 흔적과 예술의 미래

저는 작가교육원에서 시나리오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현직 작가가 직접 수업을 진행해주니 실질적인 도움이 많이 됩니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시나리오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매주 써온 글을 작가님과 수강생들이 리뷰하고, 그 과정에서 수정을 반복하는 방식입니다. 벌써 5주가 지났는데, 독립영화만 했던 저는 이 자리가 상업영화에 대한 이해를 더 넓힐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며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수강생 중 한 명이 최근 영화제에 출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저도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다만 일정이 확실하지 않아, 따로 예매를 하기로 했죠. 화요일 저녁 상영이었고, 일요일 저녁쯤 예매를 시도했는데, 매진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난감했죠. 다만 매진이긴 했어도 장애인 전용 휠체어석이 5석 남아 있었습니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영화제 홈페이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으신 분께서 취소표가 나오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답변을 주셨습니다. 살짝 희망이 생겼죠. 하지만 한 번뿐인 상영 기회였기 때문에 취소표가 나올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왜 한 번만 상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지원 예산이 줄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지금 영화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규모도 작아지고 상영 기회도 줄어든 상황에서, 과거에 제가 알던 영화제와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습니다.     


사실 지난 2년 동안 주변에서 예술 문화 지원이 축소되거나 행사의 규모가 줄어드는 것을 자주 접했습니다. 그 이유는 불을 보듯 뻔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문제를 고치려면 정부의 행정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원이 축소되고, 더 나아가 전액 삭감되는 과정에서 문화예술계는 점점 더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미 축소된 지원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정책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것이 2-3년은 걸린다고 합니다. 결국, 현재로서는 상황이 예전으로 돌아가려면 5-7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최근 서울독립영화제의 예산이 전액 삭감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느 페이스북 글을 통해 연판장을 돌리고 서명을 받고 있더군요. 올해 서울독립영화제는 5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저 역시 이 영화제를 통해 영화를 계속할 힘을 얻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미약하게나마 제 이름을 연판장에 올렸습니다.    

 

https://news.nate.com/view/20240930n30765


연판장에 서명하면서 문득 떠오른 글이 있었습니다.   

  


처음 그들이 왔을 때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영화계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예술문화지원 사업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5-7년 후, 제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스스로도 의문이 듭니다. 더 불편한 것은 이러한 과정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에 의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목소리를 내야 할 때입니다. 그들이 나에게 닥치기 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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