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범 Jul 01. 2024

건전가요에 숨겨진 이데올로기

'공부합시다'와 '아! 대한민국'

1970년대와 80년대 한국의 음반 시장에는 독특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당시 발매된 대부분의 음반은 맨 마지막 트랙에 '건전가요'라는 이름의 노래를 수록해야 했습니다. 이 건전가요는 정부 주도하에 만들어진 노래로, 대중을 계몽하고 특정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음반을 구매한 사람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노래를 접할 수밖에 없었죠.


대표적인 건전가요로는 윤시내의 "공부합시다"와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두 노래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당시 정부가 추구하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먼저 "아! 대한민국"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정수라 3집(1984)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이 노래는 한국의 자연경관과 도시 발전, 그리고 자유와 행복을 연관 짓습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라는 구절은 무한한 기회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그립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지나치게 이상화된 국가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 부르네"라는 구절입니다. 이는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감사와 찬양을 요구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영원토록 사랑하리라"라는 반복구는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애국심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가사는 당시 정부가 추구하던 '발전'과 '근대화'의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국민들에게 국가에 대한 무비판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 주도의 경제 발전 정책을 정당화하고, 정부에 대한 비판을 억제하는 효과를 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윤시내의 "공부합시다"는 다른 방식으로 정부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합니다. 이 노래의 핵심 메시지는 다음 구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윤시내 7집(1983)_공부합시다 수록 앨범

"안돼, 안돼 (그러면) 안돼, 안돼 (그러면) 낼 모레면 시험 기간이야, 그러면 안돼 (안돼, 안돼)"


이 가사는 학생이 여가 활동을 생각하는 것을 강력히 제지하고 오직 공부에만 전념할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안돼"라는 말의 반복은 청소년의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억압을 보여줍니다. 이는 당시 한국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요구했던 획일화된 가치관을 여실히 반영합니다.


두 노래를 비교해 보면, "아! 대한민국"이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데 중점을 둔 반면, "공부합시다"는 개인, 특히 청소년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려는 의도를 보입니다. 두 노래 모두 당시 정부가 추구하던 '발전'과 '성장'이라는 가치를 다른 방식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건전가요들은 대중문화를 통해 정부의 이데올로기를 효과적으로 전파하려 했던 당시의 문화 정책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억압하고, 현실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이 노래들을 바라보면, 우리는 국가와 개인의 관계, 교육의 의미, 그리고 진정한 애국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균형 잡힌 시각, 비판적 사고, 그리고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노래들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부합시다"와 "아! 대한민국" 같은 건전가요들은 과거 한국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거울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거의 유산이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교육과 청소년 문화, 그리고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보다 진보적이고 포용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노래들은 단순한 '건전가요'가 아닌, 당시 사회의 억압적 구조와 가치관을 드러내는 중요한 문화적 산물입니다.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보다 자유롭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뉴진스, 일본의 심장을 사로잡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