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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된 여정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국민 음식의 이야기

by 김형범

저녁 시간, 테이블 위에 놓인 치킨 한 마리는 단순히 한 끼의 음식 그 이상입니다. 바삭한 튀김옷, 촉촉한 속살, 그리고 곁들여 먹는 치킨무와 맥주 한 잔까지. 이 모든 조합은 그 자체로 한국인의 삶과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치킨을 사랑하게 되기까지는 단순한 맛의 문제를 넘어선 역사와 문화의 이야기가 녹아 있습니다.


치킨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기원은 미국 남부로 이어집니다. 19세기 미국의 농장에서는 흑인 노예들이 닭의 잔부위를 튀겨 먹던 것이 프라이드 치킨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노동력을 보충해주는 높은 열량과 간단한 조리법 덕분에 이 음식은 그들 사이에서 중요한 음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20세기 중반, 커넬 샌더스가 창업한 KFC를 통해 프라이드 치킨은 전 세계적으로 퍼지게 됩니다.


한국에 치킨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0~70년대입니다. 당시 명동의 림스치킨은 닭을 통째로 튀겨 내는 ‘통닭’ 형태로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후 프라이드 치킨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계기는 1980년대였습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하며 외식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간편하고 대중적인 음식인 치킨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특히, 치킨은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각광받으며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치킨은 단순히 미국식 프라이드 치킨을 받아들이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후반, 치킨에 고추장, 설탕, 간장 등을 섞은 양념 소스를 입힌 ‘양념치킨’이 개발되었습니다. 이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창의적인 변형으로, 프라이드 치킨이 느끼하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을 해결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치킨은 단순한 외식 메뉴를 넘어, 각종 행사나 축하 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치킨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많은 실직자들이 치킨 전문점을 창업했습니다. 소규모 창업이 가능하면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치킨 가게는 생계의 대안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한국 전역에 치킨 가게가 급격히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 시기에 탄생한 대패삼겹살처럼, 다양한 치킨 메뉴가 등장하며 한국인의 외식 문화에 더욱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치킨의 문화적 위상을 한 단계 더 높였습니다. 길거리 응원과 치킨은 환상의 조합으로 자리 잡았고, 이후 스포츠 경기 응원에서 치킨은 필수 메뉴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치킨은 단순한 음식에서 벗어나, 한국인의 축제와 일상을 함께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치킨은 전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인 한국식 치킨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치맥’이라는 표현은 K-POP과 함께 한류를 대표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고, 한국식 양념치킨은 외국인들에게도 인기를 끌며 세계 시장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치킨은 단순한 요리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한국인의 삶과 문화, 그리고 역사의 이야기가 녹아 있습니다. 바삭한 튀김 한 조각에는 단순한 고소함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치킨을 먹을 때마다 우리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이야기를 함께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치킨을 먹을 때 그 속에 담긴 역사를 한번 떠올려 보세요. 그 맛은 더 특별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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