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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탱이 없는 비상계엄

민주주의의 위험과 우리의 역할

by 김형범

2024년 12월 3일 오전 10시 30분, 윤석열 대통령이 반국가세력을 처단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발동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비상계엄은 전쟁이나 내란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나 발동될 수 있는 비상 조치인데, 과연 우리나라가 그러한 위기 상황에 놓였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뉴스를 찾아보니 "반국가세력 척결"이라는 모호한 명분이 이유로 제시되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과거 대한민국의 계엄령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이 계엄령을 권력 강화의 도구로 사용했던 시절,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알기에 이번 비상계엄은 단순한 정치적 조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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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비상계엄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열 살 된 아이가 내 표정을 보고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야?” 나는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발동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습니다. “비상계엄이 뭐야?” 나는 나라가 큰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내리는 특별한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또 물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정말 위기야?” 나는 아이의 물음에 잠시 멈칫하다가 되물었습니다. “네 생각은 어떠니?”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단 한 마디였습니다. “얼탱이가 없네.”


그 순간,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열 살짜리 아이의 직관적 반응이 상황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지금 나라가 위기인지, 아니면 지도자가 위기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지도자는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바탕으로 권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 비상계엄 선언은 지도자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황이 얼마나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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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를 봉쇄하려던 계획은 다행히 무산 되었습니다

이 사태를 계기로 나는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완벽하고 최고의 제도로 여기곤 하지만, 사실 민주주의는 최소한의 제도에 불과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를 "타락할 수밖에 없는 제도"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대중이 감정과 직관에 의존해 지도자를 선택하는 과정을 위험하게 보았습니다. 그는 국가를 배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다를 항해할 때, 선장을 아무나 뽑겠는가? 아니면 항해에 필요한 지식과 규칙을 제대로 아는 사람을 뽑겠는가?” 그의 주장은 투표 역시 하나의 기술이며, 체계적인 교육과 판단력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자신도 민주주의의 결함을 몸소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는 기원전 399년,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500명의 배심원이 내린 투표 결과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법과 체제를 존중했지만, 무분별한 투표가 가져오는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완벽하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의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소한의 방어막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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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를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그는 민주주의에 의해서 처형 당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경고는 조선의 왕정에서 쉽게 연관 지을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 같은 성군이 나라를 다스릴 때는 태평성대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연산군처럼 권력을 남용하는 군주가 있을 때는 나라와 백성이 모두 고통받습니다. 민주주의는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탄생한 제도입니다. 하지만 지도자가 권력을 남용하면, 민주주의도 왕정만큼이나 취약해질 수 있습니다. 이번 비상계엄 선언은 세종대왕의 리더십과 연산군의 폭정 사이에서, 민주주의가 얼마나 지도자의 품격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내 아이가 말한 “얼탱이 없다”는 말은 단순한 어린아이의 반응이 아닙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꿰뚫는 통찰이었습니다. 지도자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판적 사고와 시민의 참여로 이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시스템 자체로 완벽하지 않지만, 우리 모두의 지속적인 노력과 감시를 통해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는 나에게 민주주의의 중요성과 동시에 그 한계를 일깨워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도자를 뽑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감시하고, 필요할 때는 바로잡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이제 나는 내 아이에게 “얼탱이 없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민주주의의 가치를 가르치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의 미래는 그것을 단순히 사용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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