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위의 얼굴, 응원봉과 K-팝으로 빛나는 축제의 장
최근에 ‘한국이 싫어서’라는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그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요즘 젊은 사람들의 정서를 반영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헬조선, 3포 세대, 5포 세대 같은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역시 요즘 사람들은 한국을 싫어하는구나”라는 편견이 제 안에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시위 현장을 보면서 제 생각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응원봉의 불빛이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K-팝 노래에 맞춰 사람들이 춤을 추며 함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이전의 시위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단순한 분노나 좌절이 아닌 활기와 연대의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정말로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보다 더 이 나라를 사랑해서 이렇게 추운 겨울에도 거리로 나온 것이 아닐까?”
이전의 시위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더욱 뚜렷합니다. 과거의 시위는 대개 투쟁과 갈등의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이 익숙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시위는 마치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로 변화했습니다. 응원봉과 K-팝 음악이 어우러진 집회 현장은 밝고 활기찼고, 사람들은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박수를 치며 함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외신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영국 BBC는 이번 시위를 “야외 음악 축제와 같다”고 표현했으며, 프랑스 AFP 통신은 “댄스 파티를 연상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시위”라고 보도했습니다.
시위의 주축이 된 세대는 10대와 20대의 젊은 층이었습니다. 이들은 촛불 대신 아이돌의 응원봉을 들고 나왔습니다. 바람에 꺼지는 촛불의 한계를 넘어서, 꺼지지 않는 LED 불빛의 응원봉은 시위에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응원봉은 단순한 조명 도구가 아니라, 아이돌을 향한 팬덤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의 상징물을 시위에 들고 나온다는 것은 단순한 참여 이상으로, 연대와 소속감을 표현하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응원봉들이 모여 하나의 불빛을 이루는 장면은 마치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로 모여 연대하는 상징처럼 보였습니다.
음악도 이번 시위의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과거의 시위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광야에서’ 같은 민중가요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K-팝이 새로운 배경음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로제의 ‘아파트’, 에스파의 ‘위플래시’ 같은 곡들이 울려 퍼졌고, 참가자들은 그 노래에 맞춰 함께 노래하며 춤을 추었습니다. 이러한 노래들은 원래 정치적 의미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지만, 이번 시위에서는 연대와 공동체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특히 ‘다시 만난 세계’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 집회에서도 불린 적이 있어,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시위 현장에는 유쾌한 요소도 많았습니다. ‘전국 집에누워있기 연합’, ‘스파게티 몬스터 연맹’, ‘강아지 발냄새 연구회’, ‘꽃심기 클럽’ 같은 기발한 단체명들이 적힌 깃발들이 등장해 현장의 분위기를 유머러스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깃발들은 단순한 웃음거리를 넘어서, 시위 참여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기발하고 독창적인 발상들이 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고 현장에 참여하거나 온라인으로 연대했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과거의 진지하고 무겁기만 했던 시위와는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외신들은 한국의 이러한 시위 문화를 단순한 현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한국 민주주의의 진화”라고 평가했습니다. 비상계엄 해제라는 정치적 사건 속에서 시민들은 평화롭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표현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목소리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의 변화를 의미했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사태를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보도하며, 한국의 시민 의식과 민주주의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았음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기성세대의 반응도 흥미로웠습니다. 한 50대 참여자는 “내가 대학생이었던 30년 전의 시위와는 전혀 달라서 놀랐다”며 “오히려 우리 세대가 은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농담 섞인 소감을 전했습니다. 과거의 시위는 경찰과의 충돌, 긴장감이 넘치는 상황들이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지금의 시위는 평화롭고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춥고 어두운 겨울 밤에 사람들의 응원봉 불빛이 하나로 빛나는 장면은 함께하는 연대의 상징처럼 보였습니다. 그 속에서 젊은 세대들은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더 나은 사회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번 시위는 단순한 정치적 요구의 장이 아니라 문화적 축제의 공간이자 공동체의 장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젊은 세대의 창의성과 참여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경험했던 시위와는 전혀 다르지만, 어쩌면 이 변화가 민주주의의 새로운 진화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응원봉의 불빛과 K-팝의 떼창이 어우러진 이 새로운 시위 문화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해졌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남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한국이 싫어서’라는 영화 제목을 보며, 젊은 세대가 한국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위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더 나은 한국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시위에 참여한 이유는 단순히 분노나 불만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더 나은 한국,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그들을 움직였습니다.
시위의 방식이 바뀌고, 목소리를 내는 방법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시위가 싸움과 갈등을 통해 변화를 요구했다면, 지금의 시위는 연대와 창의성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 합니다. 젊은 세대의 새로운 접근 방식은 단순히 신선함을 넘어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끄는 새로운 바람이 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이 담긴 외침은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이 좋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