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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이 밴드와 나는 반딧불: 시대를 기록하는 목소리

by 김형범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게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를 건네줬다. ‘외국인들도 가사를 모르고 듣다가 눈물을 흘린다’는 짧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무심코 재생 버튼을 눌렀고, 전주가 흐르자마자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첫 소절이 나오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

세상이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허망하게 느껴졌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아무리 움켜쥐려 해도 손아귀에서 흩어지는 것들, 붙잡고 싶은데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라고 말하는 이 노래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마음을 담고 있었다.

이 노래가 최근 황가람이 리메이크를 해서 유명해진 노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https://youtu.be/x9Jz2OueIGY?si=HkvivE4HW9MWnGyC

https://youtu.be/CL5VBKUK-_Y?si=AIMuyO9r0zqYz8CZ


유퀴즈와 개그콘서트에도 나온 노래였다. 그리고 이 노래의 원작자가 바로 "중식이 밴드"의 중식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노래를 듣다 보니 문득 10년 전의 다큐멘터리 한 편이 떠올랐다.


나는 중식이다: 대한민국 청년의 자화상

이 다큐를 처음 봤을 때, 굉장히 실험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https://youtu.be/VEmlOjU6Mq8?si=dq206KxxgHSDI4T4


10년전 작품이라고는 여길 수 없게 모든 장면이 신선하다. 중식이가 직접 들고 찍은 소니 액션캠의 화면은 기존의 다큐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냈다. 카메라는 세상에 대해서 말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가 바라보는 ‘자신의 삶’이었다.

그의 모습은 2025년 대한민국 청년들의 현실과 다르지 않았다. 아티스트로서 살아가고 싶지만, 생계를 위해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삶.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며, 어딘가 떠밀려 가는 듯한 나날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그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으려 했다. ‘나는 중식이다’라는 제목처럼, 그는 누구의 것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중식이다 속 ‘아이를 갖고 싶다니’: 아직도 유효한 노래

이 다큐에 삽입된 또 하나의 노래, ‘아이를 갖고 싶다니’.

https://youtu.be/b_o0lA2-75U?si=klYnT_ixVvbXxpn6


이 곡을 다시 떠올리며 들었을 때,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노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아기를 낳고 싶다니 / 돈도 없으면서"
"아기를 낳고 싶다니 / 집도 없으면서"

노래의 가사는 너무나도 적나라해서, 한마디 한마디가 폐부를 찔렀다. 1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아이를 낳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들 하지만, 이런 현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구질구질함 속에서 찾는 위로

사람들은 보통 ‘구질구질한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그런 현실 속에서,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보며 묘한 위로를 받는다. ‘나는 반딧불’이 감성적인 멜로디와 가사로 희망을 이야기했다면, ‘나는 중식이다’와 ‘아이를 갖고 싶다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두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맥락에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중식이 밴드는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밴드가 아니라, 시대를 기록하는 존재인 것 같다. 그의 목소리는 맑고도 힘이 있고, 그의 음악은 슬프지만 따뜻하다.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음악이 유효한 이유는, 그것이 그저 하나의 노래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대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오늘 ‘나는 반딧불’을 듣는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괜찮을까. 우리도, 반딧불처럼 작은 빛을 내며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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