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조선 시대에는 특별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전우치였으며, 그는 고전 소설의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우치는 사람들에게 우사(羽士)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도술을 사용하는 신비로운 도사로 유명했습니다. 특히 전우치의 이야기는 환술이라는 마법 같은 기술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기록과 소설로 전해져 왔으며, 그중에서도 '전우치전'이라는 소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전우치는 실제로 조선 중종 시기에 살았던 인물로, 그의 본관은 남양 전씨와 담양 전씨가 서로 자기 조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우치는 한때 관직에 있었지만, 스스로 사직한 뒤 송도라는 곳에서 숨어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백성을 현혹시켰다는 이유로 붙잡혀 감옥에서 죽었다는 전설이 있지만, 그의 무덤을 파봤더니 시신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어 더욱 신비로운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소설 '전우치전'에서는 전우치가 마법 같은 능력으로 조정을 골탕 먹이기도 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구해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호리병에 들어갔다가 나오거나 환술로 사람들을 속이는 장면들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부자들을 혼내주는 모습도 등장하는데, 이러한 점에서 홍길동과 비슷한 면모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우치의 이야기는 더 유머스럽고 기발한 전개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왔습니다.
전우치가 사용한 도술은 환술과 같은 눈속임 기술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윤군평이나 서경덕 같은 당대의 뛰어난 도사들과 대결할 때는 지거나 혼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우치는 백성들에게 즐거움과 교훈을 주었으며, 독창적인 도사로서의 이미지를 남겼습니다. 그의 도술이 여우 요괴와의 인연에서 시작되었다는 전설도 있어서, 그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고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이제부터 전우치의 멋진 이야기를 11부작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옛날 무협 소설 같은 분위기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전우치의 모험을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려 말, 남서부 지역에 이름난 인물이 하나 있었으니, 그의 성은 전(田)이고 이름은 숙(淑)이며, 별호(별명)는 운화선생이라 불렸다. 그는 대대로 명문가의 자손이었으나, 높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산속에 숨어 살며 학문을 즐겼다. 때때로 벗들과 함께 자연의 경치 속에서 시를 읊고 대화를 나누며 세월을 보냈다. 사람들은 그를 "산속의 처사"라 불렀다.
운화선생의 아내는 최씨 집안의 딸로, 대대로 높은 관직을 배출한 명문가 출신이었다. 그녀는 조용하고 점잖은 인품을 지녔고, 외모와 덕망을 겸비한 훌륭한 여인이었다. 부부는 서로 공경하며 사이좋게 지냈으나, 결혼한 지 10여 년이 지나도 자식이 없어 밤낮으로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
어느 날, 부인 최씨가 꿈을 꾸었는데, 꿈에 하늘에서 구름이 내려오더니, 구름 속에서 푸른 옷을 입은 아이가 푸른 연꽃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그 아이는 최씨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며 말했다.
"저는 영주산에서 약초를 캐던 선동(仙童, 신선의 아이)입니다. 하늘의 벌을 받아 인간 세상으로 쫓겨났으니, 부디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부인은 이 꿈에 크게 기뻐했으나, 꿈에서 깨어나자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남편 운화선생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남편은 그 이야기를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우리 부부는 팔자가 기구하여 자식이 없을까 봐 걱정했는데, 당신의 꿈이 이렇다면 이는 하늘이 귀한 자식을 점지해준 신호가 틀림없소."
그렇게 말한 후, 그는 아내와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과연 그달부터 최씨에게 태기가 생겼고, 열 달이 차자 하루는 집을 화려한 구름이 감싸고 향기로운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했다. 운화선생은 집의 큰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때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날, 최씨는 출산의 고통 중에 문득 꿈속의 동자가 자신 앞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놀랍고 기쁜 마음에 정신이 아득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의 피부는 옥처럼 하얗고 윤기가 흘렀으며, 몸집도 크고 기골이 장대했다.
운화선생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이 아이는 꿈에서 본 동자와 같구나. 이름을 운치(雲致)라 하고, 자(字)는 몽중선(夢中仙)이라 하겠소. 별호(별명)는 구십자(口十子)라 하리라." (구십자는 ‘田(전)’ 자를 쪼개어 해석한 것이다.)
운화선생과 최씨는 이 아이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했다. 운치는 점점 자라 일곱 살이 되었고, 그때부터 운화선생이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머리가 비상하여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쳤고, 총명하고 영리하여 주변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운화선생은 그런 아들을 지나치게 사랑했고, 열 살이 되었을 때는 부부의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세상사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온다고 하더니, 운화선생이 갑자기 병에 걸리고 말았다. 여러 가지 약을 써보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운화선생은 병상에 누워 부인을 불러 말했다.
"내가 보건대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소. 무엇보다도 아들의 성장 과정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 가장 큰 한(恨)이오. 부인은 부디 마음을 굳게 먹고 나의 유언을 저버리지 말고, 운치를 잘 키워 조상의 제사를 받들고 가문의 명예를 지켜주시오. 부디 몸도 잘 돌보시오."
부인은 이 말을 듣고 실성한 듯 눈물을 쏟았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며칠 동안 슬픔에 빠져 있었다. 그 후, 운화선생은 세상을 떠났다.
최씨는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며 가슴을 치고 몸부림쳤고, 운치 또한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자주 기절했다. 하지만 최씨는 슬픔을 억누르며 어린 운치를 달래고 위로했다.
어린 운치는 나이는 어렸으나, 아버지의 장례 절차를 예의에 어긋남 없이 정성껏 치렀다. 초상(장례)을 치른 후에는 할아버지의 묘소에 아버지를 모셨고, 삼년상을 지극한 효심으로 지냈다. 그의 지극한 효심에 고향 사람들은 감탄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