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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 그림 속으로 사라지다

전우치전_8편

by 김형범

어느 날, 임금이 호조 판서를 불러 물었다.


"전에 들으니 호조 창고의 은과 돈이 변했다고 하더니, 지금은 어떠하냐?"


호조 판서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예전 그대로 변함이 없습니다, 전하."


임금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곧 전우치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네가 직접 창고를 조사해보고, 그 결과를 보고하라."


전우치는 호조 창고로 가서 곳곳을 살펴보았다. 창고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은과 돈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전우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와 임금에게 아뢰었다.


"전하, 창고의 은과 돈은 예전 그대로입니다. 아무런 변동이 없습니다."


임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속으로는 전우치의 능력이 요술 같은 술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그때, 한 신하가 앞으로 나와 보고했다.


"전하, 호서 지방에 사람들이 몰래 모여 반란을 도모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이를 보고한 자와 관련 문서를 확보하였사오니, 조사 명령을 내려주시옵소서."


임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금부와 포도청에 명을 내려 반란을 모의한 자들을 잡아오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란을 일으킨 자들이 관아로 끌려왔다. 임금이 친히 심문했다.


"네놈들, 누구의 지시를 받아 반란을 일으켰느냐? 어서 사실대로 말하라!"


반란을 일으킨 자들 중 한 명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우리의 계획은 전우치를 임금으로 삼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일이 발각되었으니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임금의 얼굴이 붉어졌다. 크게 소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역시나 전우치다! 내가 그놈을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내 그가 언젠가 역모를 꾀할 줄 알았다!"


곧바로 전우치를 불러들이라 명했다. 전우치가 조정에 끌려오자, 임금은 격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결국 반역을 꾸미는구나! 이 일을 명확히 밝힐 필요도 없이 너는 죽어야 마땅하다!"


전우치는 결박당한 채 끌려갔다. 형벌이 집행될 준비가 끝나자, 전우치는 억울한 마음에 임금에게 간청했다.


"전하, 제가 죽기 전에 평생 쌓아온 재주를 한 번만 보여드릴 기회를 주십시오. 이 재주를 전하지 못하고 죽으면 원혼이 될 것입니다."


임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놈의 재주가 얼마나 대단한지 시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리하여 임금은 전우치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좋다. 네 재주가 무엇이냐? 말해보아라."


전우치가 대답했다.


"저는 그림을 그리면 그림 속의 사물이 살아 움직이는 재주가 있습니다. 나무를 그리면 자라고, 짐승을 그리면 걸어다니며, 산을 그리면 그 안에 초목이 자랍니다."


임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그럼 그림을 그려보아라. 만약 너의 말이 거짓이라면, 너의 목숨은 바로 그 자리에서 끝날 것이다."


임금은 필묵과 종이를 내주었다. 전우치는 결박이 풀리자 손에 붓을 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에서 산과 나무가 그려졌다. 붓의 놀림이 유려했으며, 산과 나무의 윤곽이 점점 선명해졌다. 이어서 폭포가 그려졌고, 시냇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버드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졌고, 그 아래에는 나귀 한 마리가 편안하게 서 있었다.


임금과 신하들은 그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그림을 지켜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허허, 저게 정말 그림이냐? 꼭 살아 있는 듯하지 않은가!"


그림이 완성되자, 전우치는 붓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전하, 그림이 완성되었사옵니다."


임금은 엄숙히 말했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할 작정이냐? 이 그림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


전우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은 이제 천하에 남길 것이 없으니, 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 산중으로 돌아가고자 하옵니다."


임금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전우치는 그림 속의 나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가 종이 위의 나귀에 발을 디디는 순간, 발이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신하들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전우치가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전우치의 몸은 점점 그림 속으로 들어갔고, 그는 그림 속의 나귀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천천히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임금이 소리쳤다.


"멈추어라! 전우치! 당장 돌아오라!"


하지만 전우치는 나귀를 몰며 산을 올라갔고, 곧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저놈을 잡아라!"


군사들이 달려들어 그림을 찢으려 했지만, 그림 속 산과 폭포가 꿈틀거리며 종이 위에 물이 뿌려졌다. 물방울이 튀어 군사들의 얼굴을 적셨고, 그 순간 모두의 몸이 굳어버렸다.


임금은 분노하며 소리쳤다.


"내가 또 속았다! 전우치를 잡아들이는 자에게 천금을 내릴 것이다! 전국에 수배령을 내려라!"


곧바로 명령이 내려졌고, 관아에서는 전우치를 잡으려 수색에 나섰다. 고을마다 전우치의 생김새를 그린 수배서를 돌리며 백성들에게 알렸다.


"전우치는 얼굴이 길고 눈이 매섭고 키는 보통 남자보다 크다. 술법을 부릴 수 있으니, 기이한 일이 있으면 즉시 신고하라!"


그 후로 전우치에 대한 소문은 전국으로 퍼졌다. 전우치의 얼굴을 본 사람이 있다 하면 마을 전체가 들썩였고, 서로를 전우치로 의심하는 일도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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