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는 요술로 임금을 속여 죽을 위기를 넘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에게 모든 사연을 이야기하자,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아들을 엄하게 꾸짖었다.
"다시는 조정에 나가지 말아라. 네가 임금을 속였으니 그 죄는 하늘과 땅 사이에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죽은 후에 조상님을 어떻게 뵈려고 하느냐!"
전우치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산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글을 읽으며 지냈다. 때때로 나귀를 타고 경치를 구경하며 세월을 보냈다.
어느 날, 산속을 거닐던 전우치는 나무에 목을 매려는 여인을 발견했다. 그녀는 중 한 명과 함께 산에 들어왔다가 홀로 나무에 올라 목을 매고 있었다. 전우치는 급히 뛰어가 그녀의 목을 풀고 손발을 주물러 되살렸다.
전우치가 연유를 묻자, 여인은 울면서 말하기를,
"그 중은 저의 아버지 생전에 친하던 사람입니다. 저는 홀로 과부로 지내며 절개를 지키고 있었는데, 오늘은 아버지의 기일이라 중이 찾아와 제사를 지내자고 하며 절로 데려갔습니다. 저는 그 말을 믿고 따랐으나, 그놈이 갑자기 나쁜 마음을 품고 저를 협박하여 절개를 훼손하려 했습니다. 살아서 더 이상 무슨 낯으로 사람을 보겠습니까?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것입니다."
전우치는 여인을 위로하고 집으로 돌려보낸 후, 중을 잡으러 산속의 암자로 향했다. 암자에 도착하니 그 중이 그곳에 있었다. 전우치는 요술로 중의 모습으로 변신해 그의 행세를 했다.
잠시 후, 포도기찰이 암자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중의 모습을 한 전우치를 보고 전우치라 여겼다. 그들은 급히 태수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태수는 기뻐하며 군사를 보내 중을 붙잡고 결박했다. 중은 전우치로 오해받아 경성으로 압송되었다.
경성에 도착한 중은 즉시 왕 앞에 끌려가 친국을 받았다. 그때 승정원에서 보고하기를,
"전하, 각 도에서 전우치를 잡아들인 자가 무려 361명이나 됩니다. 이는 전우치의 요술이 분명합니다."
임금은 크게 노하여 말했다.
"어디서 요망한 놈들이 이렇게 날뛰는 것인가! 오늘 반드시 전우치를 잡아 죽일 것이다!"
이때 도승지 왕연희가 아뢰었다.
"전하, 전우치의 환술이 너무나 교묘하니, 이번에도 놓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짜든 가짜든 관계없이 모두 베어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임금은 왕연희의 말을 옳게 여겼다. 그는 십자각에 전좌를 마련하고, 잡혀온 전우치로 지목된 자들을 하나씩 베어 죽이기 시작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임금 앞에 무릎을 꿇고 외쳤다.
"전하! 저는 전우치가 아닙니다. 저는 바로 도승지 왕연희이옵니다!"
임금이 자세히 보니 과연 왕연희였다. 임금은 놀라 좌우에게 물었다.
"이자가 정말 왕연희가 맞느냐?"
좌우의 신하들이 대답했다.
"아니옵니다, 전하. 저자는 전우치입니다."
임금은 크게 탄식하며 말했다.
"요괴의 작난이 이렇게 심하니, 어찌 국운을 보전할 수 있겠는가. 전우치 하나를 죽이려다가 무고한 신하와 백성들까지 죽이게 되었구나."
그날 임금은 친국을 파하고 왕연희의 결백을 확인했다.
이때 전우치는 구름 속에 숨어 요술을 부려 스스로 왕연희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그는 왕부로 돌아가 하인들과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하인들은 아무 의심 없이 "상공"을 모셨고, 전우치는 내당으로 들어가 부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부인은 그가 왕연희라 생각하고 아무 의심 없이 그와 담소를 나누었다.
그때, 진짜 왕연희가 궁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집에 도착해 하인들을 보자 대노하며 물었다.
"이놈들아! 내가 지금 들어오는데 어찌하여 문전에서 대기하지 않았느냐?"
하인들이 놀라 대답했다.
"전 상공께서 이미 돌아오셨고, 지금 내당에 계십니다."
왕연희는 급히 내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부인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왕연희는 불같이 화를 내며 외쳤다.
"이놈은 누구냐! 감히 내 집에 들어와 내 부인과 함께 있단 말이냐!"
전우치는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네가 누구기에 내 얼굴로 변장하고 내 부인을 넘보느냐?"
왕연희는 하인들에게 명령했다.
"어서 이놈을 붙잡아라!"
전우치는 하인들에게 외쳤다.
"이 사내를 결박하여라! 그는 요괴가 변장한 것일 뿐이다!"
하인들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몰라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 마치 "누가 까마귀의 암수를 구분할 수 있겠는가?"라는 속담이 떠오를 만큼 혼란스러웠다.
이때 전우치는 갑자기 물을 뿜어 왕연희의 얼굴에 뿌렸다. 그러자 왕연희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점차 구미호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하인들은 크게 놀라 몽둥이와 칼을 들고 구미호를 내리치려 했다. 그러나 전우치는 그들을 말리며 말했다.
"함부로 죽이지 말라. 이 요괴는 천년 묵은 구미호다. 만약 죽이면 큰 화를 부를 것이다. 일단 그를 방 안에 가두어라."
하인들은 명령에 따라 구미호를 방에 가두었다. 구미호는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도무지 움직일 수 없었고, 말하려 했으나 여우의 울음소리만 나왔다.
전우치는 구미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사람을 속이고 집안에 들어와 화를 일으키려 했으니, 이젠 그만 돌로 변하여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